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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시대의 絃인' 황병기, 진정성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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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도 정치도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진정성뿐이다"


[아시아초대석]'시대의 絃인' 황병기, 진정성을 말하다 내년이면 창작활동 50년을 맞는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20일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연주가 끝난 뒤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 묻자 황 예술감독은 "아무곡도 아니고 그냥 즉흥곡이야"라며 웃었다. 그의 표정에선 즐거움이 묻어났다. 사진=이재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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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삐걱 삐걱'. 황병기(75)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의 집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경쾌한 소리가 났다. 가야금 명인의 집에 왔다는 들뜬 기분 탓인지 집안 곳곳에서 가야금에 밴 오동나무 냄새가 물씬 묻어났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을 때마다 나는 삐걱거림이 가야금 현줄을 타고 오는 가락처럼 들렸다.


◆재즈 거장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의 진정성을 좋아했다=2층에 있는 연습실을 마주하고 앉은 황 예술감독의 입에서 처음 나온 건 가야금 얘기도, 국악 얘기도 아닌 미국 재즈 색소폰 연주자 얘기였다. 황 예술감독은 미국 재즈의 거장인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1950년대 당시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비밥(Bebop)을 뒤로 하고, 너무 난해해 대중의 호응이 그저 그랬던 프리 재즈(Free Jazz)를 고집한 존 콜트레인의 모습에서 황 예술감독의 연주를 떠올려 봤다.

'예술인 황병기는 대중을 생각 안 한다', '작곡은 간절하게 표현하고 싶은 게 있을 때만 한다'고 말하는 황 예술감독은 대중과 타협하려는 시대에 필요한 건 얄팍한 타협 대신 '진정성'이라고 했다. 반값등록금에서부터 검찰과 경찰 사이의 '수사권 줄다리기'까지 수많은 사건들 사이에서 온갖 대중선동적인 구호가 나오는 지금 "대중에 영합하고 설득하려는 '귀속임'이 아닌 진정성 있는 예술적인 정치가 필요하다"는 황 예술감독의 일침은 따끔했다.


20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에서 만난 황 예술감독의 얼굴빛은 며칠 전보다 안 좋아 보였다. 전날 음식을 잘못 먹은 탓인지 배탈이 났다고 했다. 지난 16일 문화재청 주최로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수정전 목요특강' 때만 해도 농담을 던져가며 1시간 반에 걸친 강연을 거뜬히 소화했던 그다. 10대가 넘는 가야금이 벽을 따라 늘어선 연습실에 시선이 멈췄을 때 황 예술감독의 재즈 얘기가 이어졌다.


황 예술감독은 "흔히 즐기는 음악으로 생각하는 재즈에도 비대중적인 음악이 있다"며 "존 콜트레인이 대표적인데 그가 살아있을 땐 그의 음악을 아무도 안 들었다"고 말했다. 비밥으로 대중과 타협하는 대신 프리 재즈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표현했던 존 콜트레인은 당시엔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 예술로 남아 있다. 대중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담아내고 싶은 것을 가야금 연주곡으로 만들어내는 황 예술감독과 존 콜트레인은 꼭 닮은 모습이었다.


[아시아초대석]'시대의 絃인' 황병기, 진정성을 말하다


◆대중과 타협 않고 진정성으로 승부..결국은 통한다
국악의 대중화에 대한 질문을 하자 황 예술감독은 고개부터 내저었다. 국악의 대중화라는 말 자체가 잘못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내 음악을 대중화해야 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진정성이 담긴 음악, 좋은 음악은 사람들이 찾아서 듣게 마련"이라고 했다. 베토벤이나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 등도 알고 보면 모두 비대중적인 음악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찾아서 듣다 보니 대중적인 음악이 됐다는 게 황 예술감독의 말이다.


연주회를 하고 종종 곡에 대한 해설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서 하는 일일 뿐이라고 전한 그는 "예술인 황병기는 대중을 생각 안한다"며 "한 곡을 작곡하는데 수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이는 내가 진짜로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만 작곡을 하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황 예술감독은 딜레마를 실마리로 말을 이어가며 "작곡을 할 때면 매번 전통을 지키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는 딜레마에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바로 감동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담긴 음악은 결국 대중에게도 통하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황 예술감독과의 대화가 1시간쯤 이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그의 처녀작인 '국화 옆에서'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대화는 황 예술감독의 작품에 녹아든 진정성으로 흘러갔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행여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는지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신중한 그였다. 황 예술감독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내가 국악에서 딱 바라는 것이었다"며 "옛 시조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소리가 담겨있으면서도 한국적인 '국화 옆에서'와 같은 국악을 만들고 싶어 이 시를 첫 작품으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침향무'엔 조선시대 음악인 국악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 신라 사람들에게 무용곡을 부탁받았다는 생각으로 곡을 쓴 진정성이, '미궁'엔 가야금만 가지고도 서양 어느 음악보다 더 현대적인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고민이 들어있다고 했다. 그의 비대중적인 음악에 담긴 진정성이 대중에게 통한 것일까. 황 예술감독의 음반은 국악 분야 베스트셀러에 늘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5집 음반인 '달하노피곰'은 2009년 영국 음악 전문지에서 '세계 10대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서 물러나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자신은 원래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라며 "순간 순간 충실하게, 진정성 있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의 끝에서 황 예술감독은 "음악 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도 대중과 무작정 타협하려는 것보다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뼈있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대담=태상준 사회문화부 차장 birdcage@
정리=성정은 기자 jeun@
사진=이재문 기자 moo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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