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빼앗는게 아니라 공기업 역할 바로잡기죠"
평가업무는 민간에, 공적기능은 평가원으로
내년 공기업-민간 '감정평가' 역할 재조정
협회측, 집단 이기주의 아닌지
[대담 아시아경제 이규성 건설부동산부장, 정리 김민진 기자] 2008년 경찰은 광교신도시 보상평가와 관련해 부정ㆍ비리 감정평가사 44명을 적발했다. 그 해 국정감사에서는 평가사 비리가 지적됐고 국민권익위원회는 투명성을 갖출 수 있는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지난해 6월 감사원은 부실 보상평가에 대한 전면감사를 검토했다.
권진봉 한국감정원장은 "커미션 등이 관성화 돼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감정가격이 달라진다"며 "보상받는 입장에서는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국가부담이 늘어나고 이는 곧 국민의 세금부담이 느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부터 '한국감정원'이 '한국감정평가원'으로 바뀐다. 단순히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다.
한국감정원의 주요 업무영역이던 감정평가업무가 민간업계로 모두 이양되고 앞으로 생길 한국감정평가원은 타당성 조사 등 사후 검증기능과 부동산 가격공시 업무에 따른 부대업무, 각종 부동산 가격통계 구축 등 정부가 위탁하는 공적기능만 맡게 된다.
업무가 공적기능 위주로 바뀌다보니 공공기관 분류도 '시장형 공기업'에서 '준정부기관'으로 변경된다. 변화는 '감정평가 시장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다. 감정평가 시장 선진화가 곧 공적기능 강화인 셈이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마련돼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 개정안이 국회의 심의ㆍ의결을 거치면 공포 3개월 이후에 시행되고 한국감정평가원은 내년 1월1일 개원한다. 업무 변경에 따른 조직개편도 뒤따를 전망이다.
부동산 감정평가가 국민의 재산과 세금 등 돈과 직결된 것이지만 한국감정평가원 설립이 갖는 의미가 아직 일반에게는 생소하다.
한국감정원은 민간에 넘겨주는 감정평가업무의 시장규모를 60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그 만큼 민간 감정평가사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하지만 한국감정평가협회(감정평가법인ㆍ감정평가사들의 모임)의 반발은 거세다.
협회는 감정원의 공적기능 강화라는 게 민간이 수행하던 정부 용역사업을 싹쓸이하고 보상평가 등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는 속셈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같이 뛰던 선수가 심판도 보겠다는 나선 것이라고 빗댔다.
묵직한 과제를 넘겨받아 진행하고 있는 권진봉 원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난 15일로 취임 100일을 갓 넘긴 권 원장을 만나 공적기능 강화가 갖는 의미와 일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공적기능 강화 등 재편 이유와 효과를 알기쉽게 설명해달라.
▲감정평가시장 질서를 바로 잡고 정책지원 기능을 강화하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감정원이 재편되면 민간 감정평가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한국감정원은 600억원 규모의 감정평가업무를 민간에 넘겨준다. 선심성 보상평가 문제 등을 사전에 예방해 연간 최소 수천억원의 국가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민간 관이 분담하고 있던 부동산 관련 통계를 새로 생길 감정평가원에서 통합하고 정비해 부동산통계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무엇이 좋아지는 건가.
▲내 집, 내 땅의 가격ㆍ가치 얼마나 되는지를 적정한 시기에 정확하게 알려주는 게 감정평가의 주요한 임무다. 재산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해서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뢰가 떨어지면 안 된다. 공기업 역할로 감정평가의 기준, 기법, 관리 업무가 제일 중요하다. 그 동안 민간과 경쟁하느라 등한시돼 왔다. 평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부실평가, 선심성 보상평가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감정평가 시장은 국가재정과 직결된다. 보상하면서 세금이 당초 생각한 것보다 몇배 더 나간다면 그건 누가 책임져야하고 결국 누가 부담하게 되나.몇년 전 광교신도시에서 감정평가 비리로 수십명이 구속됐다. 토지 수요자가 평가한 내용과 발주자쪽의 평가 가격이 5% 정도 차이났다. 금액으로는 1조원 차이다
-신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인가.
▲감정평가할 때 정부에서 마련한 기준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평가에 대한 각종 재량행위가 많다. 재량이 너무 많으면 안된다. 지난해까지 기준을 정비했다. 지금까지는 내부용으로 쓰지만 앞으로 평가업계에서 쓰도록 주고 제도화 할 예정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빚더미 원인 중 하나가 보상가가 너무 올라가서다. 제대로 보상평가가 안됐다. LH, SH공사, 경기도시공사 등이 평가할 때는 감정원이 함께 들어간다. 산술평균하기 때문에 (보상평가가) 제대로 된다. 이지송 LH사장도 민간은 못 믿겠다고 얘기한다.
-협회 등 일부는 밥그릇 빼앗기라고 얘기하는데.
▲갈등국면으로 비춰지는 게 아쉽다. 업계(협회)에서는 잘하고 있는데 우리(감정원)가 기존에 하던 것을 다 빼앗아 간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감정원이 감정평가업무를 민간에 넘기면 평가사들의 수익은 늘어난다. 대신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할 공적업무, 협회에 위탁된 업무를 다시 가져오겠다는 거다. 공시가격, 총괄업무, 감정평가사 타당성 검사문제, 부동산 정보체계 구축 등의 업무가 협회에 위탁돼 있다. 공기업에서 할 일을 민간이 하고 있다. 5년, 10년 전에 이미 했어야하는 일이다.
-갈등 수습책은 있나.
▲협회가 정부에 대해 부딪치는 거 처음 본다. 할 자리가 따로 있다. 평가사들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집단이기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다. 전문성 없으면서 평가사들을 규제하려 한다는 게 협회 목소리다. 전임 감정원장과 직원들은 밥그릇 싸움처럼 비춰질까봐 우려해 대응을 안 했다. 이제는 내용을 제대로 알리자고 나섰다.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판단기준이 돼야한다. 이익단체인 협회를 위한 것인지, 특정 업계를 위한 것인지, 국민을 위한 것인지 판단기준은 간단하다. 복잡할 것 없다. 협회에서는 수수료 등 정부에서 지원하는 주수입원이 없어지니 그런다.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될 수 있도록 최선 다하겠다.
-새 수익모델은.
▲감정평가 업무를 민간에 넘기니 감정원의 수익이 상당히 줄어든다. 새로운 업무는 수익에 큰 도움이 안되면서도 업무량은 늘어나는 통계, 조사, 평가사 관리 업무다. 비주거지 공시지가업무 등 새로운 수익상품에 대한 구상도 하고 있다. 새 먹거리를 어떻게 할 지 25명 정도의 내부 테스크포스(TF)팀도 구성했다. 수익이 줄어들면 조직ㆍ인력 개편문제가 생긴다. 외부 용역결과 받아서 정부와 협의해서 할 일이다.
-2012년 대구혁신도시로 이전해야한다.
▲삼성동 감정원 사옥은 상반기 내 감정평가 실시해 하반기 입찰절차 등을 통해 매각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강남 노른자 땅이라 벌써부터 문의가 많다. 이전할 대구 사옥 부지대금 249억원 중 100억원은 이미 납부했고 반기별로 37억원씩 내고 있다. 상반기 내 설계회사를 선정해 하반기 설계 완료하고 연내에 착공해 예정대로 입주할 계획이다.
◇權 원장은
권진봉(58) 한국감정원장은 195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서울대 농공학과를 졸업했다. 기술고시 13회로 공직에 입문해 33년 간 국토해양부(옛 건설교통부)에서 근무한 건설교통 분야의 전문가다.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홍보관리관(대변인), 도로기획관, 수자원기획관을 역임하고 건설수자원정책실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건설수자원정책실장으로 근무하며 현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병대 출신으로 추진력이 강하고 도전적이다.
정리=김민진 기자 asiak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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