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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배우 김인문, 우리 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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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배우 김인문, 우리 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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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할아버지가 이 영화를 못 보고 가셨어요. 할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를 빈소에서 상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25일 저녁 타계한 배우 故 김인문 씨의 손녀딸 김은경 씨는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는 환하게 웃고 있는 김인문씨의 영정 사진과 함께 아직 한번도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는 그의 마지막 영화 '독짓는 늙은이'가 슬픔에 잠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늘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지 빈소 밖에는 슬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황순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독짓는 늙은이'는 이미 1969년 최하원 감독 연출, 황해ㆍ윤정희 주연으로 영화화됐던 한국 문예 영화의 대표격인 작품이다. 1967년 영화 '맨발의 영광'을 필두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옥이이모' 등 TV 드라마와 영화 '수탉' '극락도 살인사건' 등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쳤던 故 김인문 씨는 '독짓는 늙은이'의 송 영감 역할로 자신의 40년 연기 생활을 마무리 하려고 했다. 극 중 완벽한 독을 만들려는 '장인' 송영감과 일흔을 앞둔 자신을 동일시하며 최고의 연기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2008년 봄 선기획 단계에 들어간 '독짓는 늙은이'는 2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지난 2010년 3월 제작발표회를 가졌다. 그리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김인문 씨는 생의 마지막 불꽃을 이 작품에 바쳐왔다.

영원한 배우 김인문, 우리 곁을 떠나다 '독짓는 늙은이'의 故 김인문

하지만 본격적인 촬영에 접어들자 문제가 발생했다. 불치의 병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병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촬영 막바지에는 뇌경색에 반신불구 상태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독짓는 늙은이'에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완벽한 독을 만들려는 배우 김인문 씨의 열정과 혼이 깃든 명장면들이 하나하나 채워져 나갔다. 황순원의 원작 속에 그려진 송영감을 이겨낸 새로운 장인이 탄생하고 있었다.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완벽한 독을 지으려는 장인의 모습에 그는 유독 집착했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방광암 3기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촬영은 중단됐다. 전체 촬영 스케줄 28회 차 중 4회 차만이 진행된 상태로 10분 남짓한 겨울 장면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송 영감이 등장하는 장면 촬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었다.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영화 제작 자체를 접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지만, 김인문은 촬영을 강행하겠다고 우겼다.


"병마와 싸우면서 명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송영감의 모습을 놓치지 말고 카메라에 담아내자"는 것이 배우 김인문 씨의 생각이었다. '독짓는 늙은이'로 장편 영화에 처음 도전하는 소재익 감독도 "여기서 멈추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혼재된 구성의 영화로 가닥을 잡은 소 감독은 송 영감을 연기하는 故 김인문 씨의 투병 과정을 있는 그대로 송영감에게 투영해 냈다.


일어서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힘겨운 병마와의 싸움에 지치면 그는 촬영장에 나서지 못했다. 그의 부탁대로 제작진은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빈 자리는 그대로 둔 채 다른 배우들이 대선배의 자리를 메워나가기를 반복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드디어 하나의 이야기가 엮어졌다. 실제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장면, 병상에서 대본 연습을 하는 장면, 다른 배우들의 병문안을 받는 모습 등 故 김인문 씨가 마지막으로 연기 혼을 불사르는 장면들은 이런 식으로 카메라 안에 속속 담길 수 있었다.


영원한 배우 김인문, 우리 곁을 떠나다

2010년 가을, 의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급속도로 나빠진 그의 몸을 보고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나보다"고 했다. 촬영 스케줄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해지자 소 감독은 촬영 감독 대신 지난 겨을 내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병색이 완연한 故 김인문 씨의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데 몰두했다.


영안실을 지키고 앉은 소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故 김인문 씨의 연기 열정에 살아가는 이유와 함께 다시 메가폰을 잡을 용기를 얻었다." 소 감독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故 김인문 씨는 28일 오전 8시 장지로 향한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생의 마지막 작품에서 그는 끝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갔다. 주연 배우로 우뚝 선 것이다. 45년간의 연기인 생활을 대부분 조연으로 보낸 그였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부터 '극락도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는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배우를 지켜보는 최고의 조연배우였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연기로 혼을 불사른 마지막 작품 '독짓는 늙은이'를 통해 그는 다시 태어났다. 이번에는 주연이다. '독짓는 늙은이'의 제작자이기도 한 손녀딸 김 씨와 소 감독은 이 영화를 오는 8월 열릴 예정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품한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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