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국내에 스포츠기록분석학이 자리 잡은 것은 2001년 명지대학교 대학원에 스포츠기록분석학과가 개설된 뒤부터다. 이듬해 연구센터가 설립되며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2002년부터는 축구기록 분석자료 제공 시스템을 국내 최초 개발, KBS, MBC 등 방송사에 공급했다. 덕분에 밋밋했던 축구 중계에 슈팅, 코너킥, 오프사이드 횟수는 물론 볼점유율, 공격방향, 패스성공률 등 다양한 자료가 더해져 보는 재미를 높였다. 기록분석학에 대한 인지도도 빠르게 올라갔다.
한국의 스포츠기록분석학은 이미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실시간 경기분석도 아시아에서 한국이 최초로 시작했다. 특히 첨단기술 적용방식은 독보적이다. 세계적인 IT 강국이란 토양이 한 몫한 덕분이다.
물론 시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연구센터 건립 당시만 해도 한국은 스포츠 기록분석학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모든 매뉴얼과 연구 방법론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명지대 스포츠기록분석연구센터의 초창기 멤버인 최형준 책임연구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자료생산 노하우가 없었고, 시청자에게 도움을 주는 자료와 연구진에 도움을 주는 자료의 구분이 쉽지 않았다. 알기 쉽게 풀이한 자료를 가져가도 정작 현장에선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자료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우선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식적으로 제정한 정의와 각종 요인을 번역해 매뉴얼을 구축했다. 오역이 없어야 하므로 다른 번역작업보다 훨씬 신중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예를 들어 골키퍼 방어율이라는 게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유효슈팅 횟수 대비 선방 횟수란 뜻 같지만, 그 외에 상대 패스를 골키퍼가 먼저 차단하는 행위 등도 기록에 포함된다. 문제는 그 기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록을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제대로 정의를 이해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극복방법은 단순하지만 확실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이 미국 '야후!'에 스포츠공식자료를 의뢰했다. 덕분에 월드컵 매 경기의 경기 분석자료가 실시간으로 제공됐다. 경기를 분석하며 분 단위로 FIFA의 공식자료와 비교해 오류를 줄여나갔다. 이후 새롭게 FIFA가 제정한 정의들도 이렇게 추적했다.
악전고투 끝에 지금은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나중엔 오히려 FIFA의 2006 독일월드컵 공식자료의 오류를 잡아내 이를 지적, 수정케 할 정도였다. 그만큼 수준이 올라선 것이었다.
분석 기법 수준도 향상됐다. 초창기인 2002년 당시 데이터 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사람이 일일이 손수 기록했기 때문에 오히려 정확했다. 다만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체육전공자들은 스포츠 내적인 지식은 많았지만 기록 측정을 위한 기술 구현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엑셀이 기록 표기의 유일한 도구였을 정도다.
이후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데이타베이스도 구축했고 기록 어플리케이션도 개발했다. 2006년에는 터치스크린 입력방식에 위치정보까지 파악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2010년 당시에는 KBS와 계약을 맺은 상태여서 월드컵 방송 자료로 활용되진 못했지만, 연구자료 확보를 위한 다양한 최신 기법을 도입했다. 최 연구원은 "비유를 하자면 2002년은 계산기, 2006년은 486 컴퓨터, 2010년은 최신컴퓨터였던 셈이다"라고 웃어보였다.
다만 각종 국제대회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해진 추적시스템은 아직 활용하지 않고 있다. 장비가 워낙 고가인 문제도 있지만, 자생력 확보 차원에서 국내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노력 중인 탓이다. 이에 뜻을 둔 기업가도 대학원에 입학해 수업을 듣고 있다. K리그 중계방송에서 이용래(수원)와 윤빛가람(경남)의 활동량 비교 자료가 나올 날도 멀지 않은 셈이다.
나아가 현장과의 접점을 늘려나갔다. K리그 몇몇 구단과 손잡고 데이터를 제공했다. 축구뿐 아니라 테니스, 배구, 태권도, 배드민턴, 농구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한때 프로야구팀과 협약을 맺고 활발한 자료 제공에 나선 적도 있다. 덕분에 스포츠 기록분석학이 국내에 나름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국내 인식이 아직 기록분석학의 발전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인프라도 기록분석학의 선구자인 영국 등에 비해 뒤처지는 게 사실이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클럽 스태프에 감독, 지도자, 팀닥터는 물론 심리학자와 퍼포먼스 애널리스트(경기 분석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볼턴의 경기 분석관 총책임자가 최 연구원과 유학 시절 동기인데, 그곳에는 16명의 분석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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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1군 및 2군의 경기력과 개인 기량은 물론, 유소년의 성장 과정까지 기록으로 관리한다. 또 각 프로팀과 연계된 유소년 클럽이 저마다 학교와 유기적인 MOU(양해각서)를 체결해 기록분석을 통한 체계적인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다.
최 연구원은 "여전히 일부 경험 많은 국내 지도자와 축구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란 생각이 존재한다"고 아쉬워했다. 이규민 연구원도 "기록분석 및 정보를 통해 우수선수 육성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며 국내에서도 경기력 향상과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 구축을 위해 기록분석학을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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