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오주연 인턴기자]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을 집어삼킨 강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인들의 정신까지 갉아먹고 있다. 쉼 없이 쏟아지는 재난 관련 뉴스 때문에 마치 지진 현장에 있는 듯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글이 트위터에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원전이 잇따라 폭발하고 여진 공포가 줄어들지 않으면서 이런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고 있다.
지진 발생 닷새 째인 지난 16일 '_aicho'라는 아이디를 쓰는 일본 네티즌은 트위터에 "아직도 땅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어지럽다. 여기에는 여진이 오지도 않았는데..아마 PTSD 증상이겠지"라는 글을 남겼다.
'dan_yuuji'라는 아이디의 다른 일본인은 역시 트위터에 "지진 속보도 없는데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것 같다"면서 "글씨를 쓰는 손이 움직여서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것뿐인데 마치 지진 때문에 몸이 흔들리는 것 같다. 마음의 병이라면 의지로 다스려야지!!"라고 불안과 의지를 동시에 드러냈다.
구조대원들의 정신적 충격을 우려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아이디가 'harumakisong'인 네티즌은 "자위대나 경찰관들이 PTSD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이들을 정부와 국민이 잘 보호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의 생사도 모르는 채 어린 자녀 둘과 지진의 공포를 헤쳐나가고 있는 한 여성의 심정도 트위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Iri_ko'라는 아이디의 이 여성은 "PTSD에 걸린 것 같다"면서 "되살아나는 한신 대지진의 기억,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올 지 모르는 지진 공포 때문에 두 아이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 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이 여성은 또 "지금 나는 재해만 겪고 있는 게 아니다. 밤에 악몽을 꾸고 몇 번이나 일어난다. 땅이 계속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PTSD는 전쟁ㆍ고문ㆍ자연재해ㆍ사고 등을 겪은 뒤 공포감에 휩싸이거나 마치 같은 경험을 현재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세계무역센터 건강등록소에 따르면 2001년 9월 9ㆍ11테러가 발생한 뒤 PTSD에 시달리는 미국인은 7만여명이다. 이들 가운데 70%는 테러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김택수 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일본인들이 호소하는 PTSD는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들이 차도나 큰 길 쪽으로는 안 다니려 하고 성수대교 붕괴 당시 생존자들이 마치 붕괴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에 괴로워하던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김 전 교수는 또 "단순한 우울증은 약을 안 먹어도 빠르면 6개월 안에 치유되는데 PTSD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 질환이 만성으로 치달으면 마치 성격처럼 굳어지기 때문에 우울증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PTSD를 치료하려면 일단 반복 노출되는 충격적인 영상을 멀리하고 평상시처럼 활동하려 노력하면서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고 진단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오주연 인턴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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