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전남)=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2010년 9월 7일은 김정우(상주)에게 잊지 못할 날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평가전, 조광래 대표팀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기성용(셀틱)을 대신해 김정우를 교체투입시켰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중원을 지배하던 김정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움직임이 계속됐다.
21분 뒤, 조 감독은 조영철(니가타)를 투입하기 위해 김정우를 뺐다. 대기심의 교체 사인을 본 김정우는 허탈한 표정과 함께 벤치로 걸어 들어갔다.
13일 광양의 한 연습구장에서 만난 김정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축구를 시작한 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충격이었죠.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정우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2009시즌 K리그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른 바로 다음날 상무로 입대했다. 1년간의 피로가 그대로 누적된 상태에서 군생활까지 적응해야 했던 셈. 1월엔 대표팀에도 선발돼 남아공과 유럽 전지훈련을 떠났고, 2월엔 동아시아대회까지 치렀다.
그 상태로 2010시즌을 맞았고, 월드컵까지 치렀다. 최초의 원정 16강이란 기쁨을 누렸지만 귀국한 뒤 5일 만에 곧바로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에 들어갔다. 훈련소를 나오자마자 그는 곧바로 대표팀에서 재발탁됐고, 이란전 직전 FC서울을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다.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군사훈련이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요. 한 달 동안 훈련받은 뒤 체력이나 몸 상태가 최악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까지 제대로 쉬지 못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 이란전 당시 그는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갈비뼈 골절이었다. 처음엔 자신도 몰랐다. 군사훈련을 마친 직후 당시 이강조 광주 상무 감독은 그를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했다. 경기를 소화하기에 체력적으로 부족한 그를 배려한 조치였지만, 오히려 독이 됐다.
“공격수로 나서다 보니 몸싸움도 격했죠. 그때 서울 수비수 아디와 부딪히면서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처음엔 단순 타박상인 줄 알고 2~3개월을 그냥 뛰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계속되자 감독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곧 괜찮아 질 거라고 여겼어요”
몸 상태가 좋았을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 낫질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고, 뒤늦게 찾아간 병원에서 갈비뼈가 부러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갈비뼈가 부러진 지 3일 뒤 이란전에서 뛰었던 셈이다. 그날은 물론 지난 시즌 후반기의 부진이 그저 군사훈련의 여파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누구보다 강한 승부욕을 가진 김정우다. 최고도 아닌 최악의 몸 상태에서 교체 굴욕까지 당한 그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시즌 말미 오른쪽 발목 부상까지 겹쳐 결국 카타르행 비행기에도 몸을 싣지 못했다. 명예회복을 위해 그는 겨우내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올 시즌을 앞두고 그는 공격수 변신을 천명했다. 마땅한 공격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수철 상주 감독이 내린 결단이었다.
김정우는 자신이 있었다. 프로가 된 뒤 줄곧 미드필더로만 뛰었지만 초등학교 시절 공격수로 뛰어 득점왕을 차지한 경험이 있었다. 부상에서도 완전히 회복됐다.
“감독님께서 개막 미디어데이 때 올 시즌 저를 공격수로 기용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언론이나 팬 모두 반응이 별로였습니다. 조소를 보내는 듯했죠. 물론 저도 그런 반응이 올 거란 예상은 했습니다. 사실 저 스스로도 처음엔 의심스러웠으니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공격에서도 그의 탁월한 축구센스는 빛났다. 개막 후 2경기에서 처진 공격수로 나서 3골을 터뜨렸다. 개막전에선 홀로 두 골을 몰아넣으며 상주와 이수철 감독에게 K리그 데뷔승을 선물하기도 했다.
“저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오기가 생겼다고 할까요. 페널티킥도 원래 잘 안 차는데 골을 넣고 싶어서 이번엔 욕심을 냈죠”
올 시즌 목표를 7~8골이라 밝혔던 그는 벌써 3골을 넣었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K리그 득점 단독 선두다. 팬들은 “이러다 7골이 아니라 15골도 충분히 넣겠다”, “득점왕 경쟁에 나서는 것 아니냐”, “김정우의 재발견이다”며 감탄하고 있다. 이수철 감독도 그를 지난해 K리그 득점왕 유병수 못지않은 공격수라고 칭찬했다.
이에 김정우는 “득점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득점을 노리고 싶습니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표팀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최근 조광래 감독은 김정우가 소속팀에서 미드필더가 아닌 공격수로 나서는 것에 “대표팀 주전 경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바 있다.
최근 김정우의 활약은 이런 생각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박태하 수석코치가 “김정우가 단순히 공격적인 위치에서 뛰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이끄는 선수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A매치에서도 득점을 기대할 수 있다”며 달라진 평가를 내놓은 것.
김정우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대표팀에 다시 들어가고 싶죠”라고 운을 띄운 뒤, “자신있는 자리는 역시 미드필더입니다. K리그도 높은 수준이지만 대표팀은 또 다른 레벨이에요. 프로에서 공격수로의 활약이 반드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죠”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프로에서도 도전한 만큼 대표팀에서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격수로서 ‘해볼 만하다’기보다는 선수로서 한계를 지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에요.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인 셈이죠”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안되면 내려가야죠 뭐”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직 군인신분이지만 올해로 김정우도 서른 살이 됐다. 체력도 20대 초반과는 다르다는 걸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선수로서 뛰어온 시간보다 남아있는 시간이 적다는 것도 새삼 느낀다. 당장 전역 후는 물론 은퇴 이후에 대해서 서서히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축구 은퇴 이후는 아직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다만 전역한 뒤 기회가 되면 가까운 나라라도 좋으니 해외 무대에서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물론 선수라면 당연히 유럽에 가고 싶겠죠. 하지만 내 나이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어요. 예전에 J리그에서 뛰어본 적은 있지만, 어느 나라가 됐던 한번 뛰어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은? 김정우는 탤런트 이연두와 2년 넘게 열애중이다. 김정우의 대답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해야죠. 빨리 하고 싶어요”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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