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립니다. 아니 젊습니다. 첫 번째 장편, 그것도 평단과 관객의 엄지손가락을 동시에 치켜들게 만든 데뷔작으로 찾아온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은 82년생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무릇 주목할 만한 신인이 등장 했을 때 따라붙는 ‘재기발랄’ ‘전복적인’ 같은 수식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의 영화가 놀라운 지점은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가장 덤덤한 방식으로 전해서입니다.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뒤흔들거나, 유머와 재치라는 포장지를 쓰지 않고도 이 젊은 감독은 영화 전체의 공기를 유려하게 쥐락펴락합니다. 치기로 무장한 어린 예술가도, 조로한 관조자도 아닌 신인을 만나는 경험은 생경하지만 흥미롭습니다. 윤성현 감독을, 아니 <파수꾼>을 만나는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인터뷰 100’을 끝내고 나니 오히려 이 사람이, 그리고 이 감독이 만들어낼 다음 작품들이 진심으로 궁금해 졌습니다. 우리에게 이러는 신인감독은 당신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멜로는 원래 이렇게 시작됩니다.
* 이 기사에는 영화 <파수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0: 영화 <파수꾼>을 본 사람이라면 봤기 때문에, 안본 사람이라면 안 봤기 때문에 모두 이렇게 외칠 것 같아요. 도대체 윤성현이 누구야? 전자라면 도대체 뭐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와 이런 엄청난 데뷔작을 내놨나 일거고, 후자라면 독립영화배우인가?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사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지원작에 5천만 원 예산으로 <파수꾼>을 만들 때 만해도 이 정도의 반응과 개봉규모를 상상 못했을 것 같아요
윤성현: 사실 좀 모자라서 제 돈도 썼어요. (웃음) 일단 영화아카데미 작품들은 개봉을 한 전례들이 많지만 개봉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게 하거든요. 그저 열심히 잘 만들어서 한 7, 8개관 정도만 상영해도 되게 좋겠다는 희망만 가졌죠. 배급을 해주시는 필라멘트픽쳐스에서 처음에 10개관 정도, 라고 했을 때도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20개관이 넘게 상영을 하게 되니까 너무 좋죠. 그런데요.... 제가 너무 재미없게 대답하죠?
100: 하하하. 제가 너무 재미없는 질문을 했네요. 처음으로 관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파수꾼>의 첫 선을 보인 건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였죠?
윤성현: 네. 제일 많이 긴장이 했던 것 같아요.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했는데 머리가 거의 백지상태여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때 어떤 질문을 하셨는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사람들이 말하길 횡설수설했다고만 하더라고요. 부산에서는 반응이 별로 안... 좋더라구요. (웃음) 단편을 포함해서 그전에 찍은 영화들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대부분이었고, <파수꾼>과 비슷한 맥락에 있는 <아이들>도 밝은 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항상 객석의 반응이 즉각적이었거든요. 환호하고 즐거워하고. 그런데 <파수꾼>은 너무 조용-하더라고요. 박수는 쳐주지만 되게 못마땅한 박수 같고. (웃음)
“처음엔 ‘죽음’이란 소재를 장치로만 사용하려 했다”
100: 즐겁게 환호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니까요.
윤성현: 절망적인 엔딩이어서 환호까지 기대는 안했지만, 리액션 자체가 좀 더 클리어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관객 분들 표정이 너무 무표정하시더라고요. 관객과의 대화에 질문도 없고. 그래서 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시나 보다 생각했죠. 이후에 주변에서 영화 반응이 좋더라 이야기 해주셔도 아, 내 옆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구나, 그랬죠. 썩 좋진 않다, 이럴 순 없으니까. (웃음)
100: 사실 <파수꾼>은 아, 영화가 끝났구나, 이제 나가서 뭘 먹을까, 이렇게 쉽게 생각이 전환 되는 영화는 아니었어요. 감정적인 여운이 너무 긴 영화랄까요. 아마도 그래서 반응들이 즉각적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윤성현: 감사합니다. 지금은 즉각 반응 안 해주셔도 관객들이 그렇게 봐주시는 게 제일 좋아요. (웃음)
100: <파수꾼>의 시나리오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셨어요?
윤성현: 처음 구상했던 건 2008년 말, 그땐 간단한 한줄 정도였어요. 형사 대신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파헤쳐나간다는 내용. 사실 독립영화 하면 보기 부담스럽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래서 MTV스타일까지는 아니지만, 장르적인 쾌감이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죽음’이란 소재를 장치로만 사용하려 했던 것 같아요. 얄팍했죠. 지금의 틀이 나온 계기가 2009년 봄 정도였는데, 그 때 당시에 굉장히 충격적인 자살 뉴스들이 많았잖아요.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세상이 하얘지더라고요. 타인의 죽음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게 처음이었어요. 내가 죽음을 대했던 방식 자체가 정말 일차원적이고, 매체에서 다루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고요. 어떤 학생이 죽었다면 성적이 떨어져서, 왕따를 당해서 자살했다. 식으로 깊이 없이 접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 전에 했던 방식을 혐오하게 되면서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완전 다른 방식이 되었죠.
100: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윤성현: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으면 피해자의 아버지가 가해자를 찾아간다가 전형적인 방식이라면, 그 자각이 전환점이 되면서 오히려 <파수꾼>에서는 극 초반, 잘못된 정보로 이용되는 식으로요.
100: 어쩌면 감독님이 겪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그 과정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순차적으로 벌어지는 방식이 된 거로군요. 사실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차원적인 선입견만큼이나 남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혹 남자 그리고 그 우정을 둘러싼 견고한 영화적 신화를 깨고 싶다는 의도가 있으셨던 건가요?
윤성현: 구체적으로 의도하고 만든 건 아니지만, 아마 무의식중에는 있었던 것 같아요. 부정적이었으니까요. 많은 영화들에서 표현된 한국남자들의 모습은 그냥 마초잖아요. 그런데 사실 마초만큼 연약한 사람들도 없어요. 외유내강의 반대말이 마초니까요. 대부분의 한국남성들도 그래요. 그들이 생각보다 섬세하고 연약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의 신화를 깨고 싶다는 의지 보다는 그냥 제가 원래 알고 있는 남자들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요.
100: 그 부분이 저를 비롯한 많은 여자 관객들이 놀라기도 하고 새롭게도 느꼈던 부분 같아요. 특히나 남자고등학생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영화적인 이미지라는 게 있었죠. 온갖 욕을 접두, 접미사처럼 사용하고 패싸움을 하거나, 게임, 여자, 운동 빼면 별 관심도 없는 단순한 종족일 것 같다는 오해. (웃음) 감독님의 2008년작 단편 <아이들>을 보면 연을 밟는 소소한 사건으로 남자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파수꾼>에서는 친구들끼리 나누는 사소한 눈짓 같은걸 예민하게 받아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여자아이들도 별것 아니라고 느낄만한 한마디 말 같은데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자 아이들을 보면서 아 정말 저럴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윤성현: 매체에서 사람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있었어요. 사람은 사실 굉장히 입체적이잖아요. 저는 그 입체성에 매력을 느끼고요. 표현을 하나 하는데 있어서도 단순하지 않잖아요. 기쁨과 슬픔만 봐도, 자존심이 걸려있을 때의 기쁨과 자격지심이 섞인 슬픔은 완전 달라요. 사실 감정이라는 것이 모두 어느 정도 섞여 있고, 그 결들에는 정말 섬세한 부분들이 존재하는데 보통 그걸 아주 단선적으로만 표현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있었어요.
“긍정의 성장 뿐 아니라 부정의 성장도 다루고 싶었다”
100: 기태만 해도 굳이 한 줄 캐릭터 설명을 하자면 학교의 일진이지만 영화 안에서는 진짜 주먹으로 짱 먹고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은 별로 안 들거든요. 주먹을 좀 쓰기는 하지만 사실 그냥 어울려 다니는 몇몇 친구들 사이의 중심이라는 정도랄까. 일진이라 하면 무릇 각목 들고 18대 1로 싸우고, 패거리를 몇 십 명쯤 끌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웃음)
윤성현: 영화나 만화에서는 많이 나오죠. 하지만 학교 다닐 때는 영화 속에 나오는 일진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거의 기태 같은 정도였죠.
100: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어요?
윤성현: 저요? 음... 중...학교 때는 굉장히 폭력적이었어요.
100: 하하하, 드러 내놓고 폭력적이셨어요? 주먹도 쓰는?
윤성현: 예, 주먹을 좀 썼죠. 애들이 건드리기 좀 무서워하는 편이었어요. 그렇다고 짱, 이런 건 아니었고요. 기태라는 인물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제가 알고 있는 남자들의 정서를 약간 위악적으로 증폭시킨 감은 있지만 기태의 감정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정을 받고 싶고, 누군가가 우러러 보는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아마도 중학교 때는 굉장히 약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약했기 때문에 상처받기 싫었던 것 같고. 소통에 굉장히 미숙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가서는 동윤처럼, 대학교 가서는 희준처럼 변했던 것 같아요. 세 명 다 어느 정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어요. 짧은 삶이지만 그 동안 제가 내적으로 변화되었던 부분이기도 하구요.
100: 고등학교 때 변화가 찾아온 계기는 뭘까요?
윤성현: 음.. 그냥 피곤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 신경 쓰는 게 더 이상 싫었달까.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좀 염세주의자가 되었던 것 같아요.
100: 왜요?
윤성현: 어느 날, 과학책을 폈는데 은하계가 있는데 저 옆에 코딱지만 하게 태양계가 표시되어 있는 거예요. 아니... 내가 그렇게 크게 생각하던 태양계가 이렇게 먼지보다 작다니, 그 안에 지구가 있고, 지구 안에 대한민국이 있고, 대한민국 안에 서울이 있고, 서울 안에 서초구가 있고, 그 서초구 중학교 몇 학년 몇 반 몇 번째 줄에 내가 있다는 게 너무 충격인 거죠. 뻥! 어딘가 맞은 것 같은 기분. 그리고 한 달 정도를 아무것도 못한 것 같아요. 그걸 느끼고 나니까 점점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거 없구나. 내가 뭔들 해봤자 뭐하겠나! 어차피 먼지처럼 소멸할 것을. 불교 신자는 아니었는데 불교 철학에 매료가 되어서 스님이 될까 생각도 했었어요. 그 때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네 자신을 속여라. 무지개가 있다고 생각해라. 그 무지개가 허상일 수도 있지만 그 무지개를 향해 그냥 걸어라. 그리고 그 걷는 과정 자체를 즐겨라. 그때부터 내 자신을 속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에 간다해도 파라다이스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회사에 취직한 다해도 인생이 별거 없을 거라는 걸 알았죠. 그렇게 기본적으로는 염세적이지만 결과 대신 과정을 느끼자고 생각하니까 그 순간 가장 원하는 게 뭔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점 희준이처럼 혼자 영화보고 음악 듣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100: 영화는 결국 공동 작업이잖아요. 그런 상태라면 철학을 공부하거나 다른 인문학을 공부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과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윤성현: 인생은 별 것 없지만... 아... 이런 이야기 하는 게 나이게 맞지 않는 거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100: 나이게 맞는 거라는 게 뭐가 있나요?
윤성현: 아! 그렇겠네요. 어쨌든 인생이 별것 없다는 생각이 있는데, 영화는 별 것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현실과 달리 아예 새로운 차원에서 느끼고 공감하고 체험 할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생각요.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안 만들어진 영화가 있고, 만들어 졌어도 너무 오래전인 경우가 있고, 지금 당장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그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100: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군요.
윤성현: 네 그렇죠. 그 생각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해요. 영화를 만들다보면 영화가 감독 자신의 ‘아바타’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내가 이렇게 잘난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어서 결국 자기도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괜히 있는 척 하고, 괜히 철학적인 척 하고. 그러다보면 보기 부담스러워지고, 공감도 안 되고, 지루해지고, 저는 그런 자의식이 개입되는 순간 영화가 위험해진다고 생각을 해요.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영화는 뭘까, 내가 영화를 통해서 느끼고 싶은 게 뭘까 고민했고, <파수꾼>도 그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죠.
100: 단편들도 그렇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시키는 <파수꾼>의 제목도 그렇지만 성장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윤성현: 네, 기본적으로 성장담을 좋아해요. 성장담은 모두들 겪었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라 조금 더 공감하면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나오면 이야기가 별로여도 기본적으로 봐주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특히 영화가 끝을 향해 가면서 한 인물이 변화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좋아하고, 처음엔 오인했던 것이 이 사람을 바라봤던 시선에서 오는 변화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대부분 긍정의 성장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부정의 성장도 다루고 싶었고 그게 더 강렬하게 와 닿았어요. 어떻게 보면 공허한 성장까지도.
100: <파수꾼>을 보고나서 제일 먼저 이건 마치 설탕을 빼고 크림을 덜어낸 <릴리 슈슈의 모든 것>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성현: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던 영화이긴 했어요. 이 사람이 뭘 이야기 할지 잘 모르고 하는 구나, 하는 생각. 대신 이와이 슈운지를 굉장히 좋아해요. 너무 과소평가된 감독이라고 생각하구요. 특히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미쳤구나! 이사람 제 정신이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 용기와 상상력, 과감함에 감동을 했던 것 같아요,
100: 이와이 슈운지 영화중에서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세요?
윤성현: <러브레터>, 아니, 제일 좋아하는 건 <4월 이야기>요. 정말 별거 없는 영화잖아요. 어떠한 극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는 영화인데 저를 위로해줬어요. 그것도 아주 차분하게.
“기본적으로 모든 영화에는 멜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00: 어릴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 시절의 기억들이 영화적으로 주었던 영향이 있을까요?
윤성현: 아주 쭉 살았던 건 아니고 부모님이 공부를 하고 계셔서 미국에서 조금, 한국에서 조금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초등학교 2, 3학년 때까지 살았어요. 아마 자의식이란 게 생길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할머니 댁에 저를 놓고 갔을 때 그냥 ‘엄마, 안녕’ 그렇게 인사했데요. 보통 그럴 애가 아닌데 말이죠. 그때 나는 버려지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부정이나 모정을 다룬 영화를 보면 눈물이 한없이 나요.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본질적으로 애정을 갈구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파수꾼>에서도 의도적으로 표현된 건 아니지만 무의적으로 나왔던 것 같고요.
100: 한 배우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장에서 그렇게 잘 우셨다면서요. (웃음) 본인이 쓴 시나리오고 몇 백번도 더 봤을 상황인데 왜 눈물이 나셨는지 기억하세요?
윤성현: 기억하죠. (웃음) 저는 영화를 찍으면서도 관객의 입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몰입이 되는 순간은 눈물이 났어요. 3번 쯤 울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들이 모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었거든요. 기태가 자기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장면, 동윤이 집에 찾아가서 모진 말을 듣는 장면, 그리고 엔딩. 다른 장면이 다 무너져도 그 장면들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의 본질을 보여주는 정서적으로 중요한 장면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죄의식이라면 죄의식과의 화해하는 느낌. 좀 공허한 화해긴 하지만요.
100: 배우들이 내 머릿속에서 그렸던 대로,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그대로를 표현했을 때 오는 감동이었나 보군요.
윤성현: 아니요, 그 이상을 해줬다고 생각해요. 물론 감독으로서의 지시를 주긴 하지만 저는 배우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싶진 않고 잘 놀게 하고 싶어요. 각자의 ‘결’도 있는 거고. 만약 배우가 시나리오대로만 하면 모니터 보면서 하품했어요. (웃음) 대사는 어쩔 수 없지만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자유를 주고 싶었거든요. 울고 싶으면 울고 울기 싫으면 울지 마라,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화내기 싫으면 화내지 마라. 대신 뭐든 전형적으로 하지 마라. 느끼고 들으면서 해라. 그러다가 배우들이 모니터링 하는 저로서도 예측하지 못했던 아주 미세한 동작들,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들을 보여줄 때 제 마음이 격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온전히 배우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100: 기태를 연기한 배우 이제훈 씨에게는 어떤 ‘결’을 발견하셨어요?
윤성현: 기태는 척박하잖아요. 그런데 제훈이는 너무 멀끔한 청년 같은 느낌이 있어서 처음엔 확신이 안 오더라고요. 뭔가, 여심을 울리는 스타일이랄까. (웃음)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돌출적인 게 있어요. 연기자는 그런 의외성이 힘을 가지거든요. 눈빛에 갈망이 있고, 가끔 섬뜩한 느낌을 줄때도 있고. 캐스팅을 결정한 이후에는 그전에 연기한 양아치 느낌의 작품을 보기도 하면서 점차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도 아직 노련한 배우는 아니기 때문에 배역에 몰입하도록 영화 처음부터 제가 굉장히 악랄하게 했어요. 제훈이는 아마 아직 그 앙금이 남아있을걸요? (웃음)
100: 혹시 기태와 동윤, 희준 이 셋의 관계가 멜로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은 안하셨어요?
윤성현: 멜로... 멜로죠. 넓은 형태로.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영화에는 멜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에일리언 2>도 멜로잖아요. (웃음) 굳이 동성애가 아니라도 사물일 수도 있고, 동성일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 친구까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애정이라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넓은 의미의 애정, 넓은 의미의 멜로라고 생각해요.
100: 보통 남자들이 사회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 누가 누구를 따르고 누가 누구를 이끌고 하는 것이 서열이나 지배관계로 이해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파수꾼>에서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갈등을 만들거든요. 내 마음을 누군가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거나, 다른 놈한테 그 관심을 준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 같은 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인거죠. 이걸 힘의 논리와 정복욕이 아니라 애정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윤성현: 제가 생각하기에, 현실에서도 남자들의 세계는 완전히 멜로예요. 예를 들어 박정희, 차지철, 김재규의 관계만 봐도 그건 완전 멜로거든요. 그때의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봤는데 재밌어요. 권력의 본질이 마초성이 아니고 이런 멜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랄까. 요즘 관심 있는 건 김정일인데 아버지와의 관계, 후계자, 2인자와의 관계, 여동생과의 관계 등등 부성, 질투, 배신감, 허영심, 인정에 대한 욕구까지 저한테는 이게 권력싸움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디테일한 감정만 보이더라고요.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권 내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그들이 행했던 사회적인 차원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줬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모습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발현되었는가가 저에게는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100: <파수꾼>에 대해 “조근조근하는 말하는 영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새롭게 구상하는 영화는 그보다는 시끄러운 영화일까요? (웃음)
윤성현: SF도 하고 싶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하고 싶긴 하지만 아직까지 구상하는 건 그닥 시끌벅적하진 않아요. 아직 시나리오는 없고 구상 중인데요, 이미지가 아니라 정서라서 구체적일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 ‘결핍’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렛 미 인>의 설정처럼 비현실적인 포장으로 세팅되어 있지만 결국 굉장히 현실적인 감정에 대해 말하는 영화요. 원래 억지로 해서 되는 스타일이 아니고 촉이 와야 하는데 오늘 어쩐지 촉이 오는 것 같아요. (웃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사진. 백은하 one@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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