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성도예 길성씨
[하동=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경남 하동땅에는 명장(名匠)들이 많다. 명장은 국어사전에는 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으로 적고 있다.
하동의 대표 브랜드인 '야생차'를 만드는 장인, 차를 우려 마실수 있는 찻사발을 만드는 장인 등 저마다 맡은 분야에서 최고로 이름난 이들이다.
금오산 인근에 임진왜란 이후 400여년간 맥이 끊긴 '이도다완(井戶茶碗)'을 부활시킨 명장이 있어 길을 잡았다.
진교면 백련리의 산자락에 전통 장작가마를 짓고 다완을 빚고 있는 길성(길성도예ㆍ65)씨가 바로 그다.
마당에 들어서자 장작가마에선 흙, 불, 장인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도다완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진가를 알아본 찻사발이다. 400여년 전 조선도공의 무심의 미적 표현물인 '기자에몬 이도'는 현재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도는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한 점도 없다. 임란 이후 흔적이 사라진 것. 일본도 임란 당시 끌고 간 수많은 도공의 힘을 빌려 재현에 나섰지만 끝내 실패했다.
그런 이도를 길씨는 무심의 혼으로 빚어내고 있다. 그의 다완을 두고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이도와 가장 동일하다고 평한다.
사발 안쪽에 피어난 육각의 다이아몬드형 빙열이나 이슬꽃이 핀 듯한 매화피(굽에 생기는 결정체), 찻물에 의해 굽이 검게 변화는 모습, 비파색 등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경지다.
이도를 빚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흙. 그가 30여년 흙과 씨름하며 겨우 찾아낸 것이 하동땅의 흙이다. 이 흙은 점질이 부족해 송홧가루 만지듯 부드럽고 고운 입자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옹기는 옹기 흙이어야 하듯 이도는 이도흙으로 빚어야만 제대로 된 찻사발의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장인의 찻사발은 달랐다. 다완을 드는 순간 도자기인지 스펀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뿐히 손바닥에 감긴다. 거친 듯 투박하지만 만지면 가볍고 포근함에 묘한 울림이 있다.
그가 찻사발의 특성을 보라며 물을 붓자 그릇 안쪽이 젖어 들며 바깥 쪽으로 눈물이 맺히듯 물방울이 촉촉이 묻어났다. "그릇에 기포가 많아 물이 스며드는 것"이라며 "그릇이 숨을 쉬고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찻사발의 진가는 차를 담아 마셔보면 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자 녹차 특유의 쓴맛이 줄어 부드럽다. 찻사발에서 방출되는 강한 음이온으로 탄닌이나 카페인 등 차의 유독성분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란다.
길씨는 30여년의 도예인생을 정리할 큰 꿈을 내비친다. "현재 국내에는 이도다완에 대한 자료조차 없어 일본에만 의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지금까지 연구한 자료와 기록 등을 집대성해 후손에게 남길 이도다완 연구서를 선보일 계획이다."
돌아서는 길, "찻사발은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의 혼이 교감해야 최고의 명품이 된다"는 장인의 마지막 말이 묘한 울림으로 남는다.
그 옛날 조선 도공이 그랬듯이 무심의 몸짓으로 장인은 다시 가마로 향한다.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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