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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녕의 골프기행] "좋은 볼입네다~" 평양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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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녕의 골프기행] "좋은 볼입네다~" 평양골프장 평양골프장 1번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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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곳, 바로 북한의 평양골프장이다.

평양 양각도호텔에 여장을 풀고 18층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 전경은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회색의 도시다. 7박8일 평양에 머물면서 같은 민족이지만 많은 이질감을 느꼈다. 9홀 양각도 골프장과 북한의 유일한 18홀 골프장인 평양골프장은 마치 외국골프장 같았다. 특히 사용하는 골프용어가 생소해 필자 역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평양골프장에서 비회원 요금인 100달러의 시설이용료를 내고 밀차(카트)를 미는 여성 동무와 함께 1번 타격대(티잉그라운드)로 향했다. 북한 여성을 처음 만나 "참 예쁘다"며 말을 건네봤지만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설명을 부연하며 '미인'이라고 하자 이북에서는 '곱다'고 해야 통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골프는 자본주의의 비생산적 산물이라고 터부시되는 종목이다. 처음 골프장이 만들어진 건 1987년 4월20일, 김일성 주석의 7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총련에서 기금을 조성해 건설한 바로 이 평양골프장이다. 평양 도심에서 100리가 채 안 되는 거리다.


춘천 소양호와 비슷한 규모의 태성호 주변 28만평 부지에 건설된 이 골프장은 18홀 규모(파72)로 전장은 6271m, 국제규격을 갖춘 코스다. 18홀 중 8홀이 호수와 접해있어 경관이 아주 수려하다. 코스는 평탄해 쉬운 편이지만 블라인드홀이 4개가 있어 티 샷할 때 목표 지점을 설정하기가 만만치 않다.


앞출발대에서 타격 순서를 정하는데 금속봉처럼 대나무를 잘라 붉은 줄로 그어 만든 '순서 정하기'를 사용했다. 공알받침(티) 위에 공알을 놓고 제일 긴 나무채로 제1타를 하늘로 날리니 평양에서의 긴장감이 하늘로 함께 날아가 버렸다. 안내양이 "좋은 볼입네다"라며 "휘두름이 좋으니 다음 그로브(클럽)는 7번 쇠채로 하시지요"하고 손에 쥐어준다.


이어 "아야, 굉장합네다! 정착지에 올라탔으니 캬브(컵) 구멍에 넣으면 버디군요." 이번에는 영어가 나온다. 또 "정착지에서 구멍에 넣으려면 올경사와 내리경사를 잘 봐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첫 중간거리(파4)에서 빠(파)를 잡았다. 다음 홀인 긴거리(파5)로 이동했다.


타구한 공알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안내양은 "경계선 밖이니 어서 벌타를 먹고 하나 더 치시라우요"하면서 재촉한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곧 간이 매대가 나온다고 말했다. 잔디구역(페어웨이) 내에는 모래 웅덩이(벙커)가 없고 대신 깊은 수풀이 연해 있어 조금만 빗나가면 공알을 분실하고 만다.


18홀을 마치고 나니 머리에 혼선이 생겨 골치가 아프다. 같은 백구를 가지고 라운드하는데 이렇게 용어가 다르다니. 멋 훗날 분명 통일이 되겠지만 일체감을 가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ㆍ사진=김맹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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