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연 테이프서 피고인 DNA 검출
25년간 장기 미제로 남았던 '안산 부부 강도살인' 사건의 유죄를 입증한 결정적 물증은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검은색 절연 테이프'였다. 지문이나 혈흔이 남지 않아 중요 증거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 테이프는 경찰이 현장에서 수거해 보관해왔고, 훗날 장기 미제 사건을 푸는 열쇠가 됐다.
재판부 "교화 가능성 없는 피고인, 사회에서 격리해야"
10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주지법 형사12부(김도형 부장판사)는 이날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45)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화와 계도 가능성이 없는 피고인을 영구적으로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범행 현장에서 나온 검은색 절연 테이프의 증거 능력이었다. 이 씨의 유전자(DNA)가 검출된 이 테이프는 범행을 입증할 사실상 유일한 물증이었기 때문에 검찰과 이 씨 측 변호인은 이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이날 재판부는 '경찰이 현장에 없던 테이프를 갑자기 증거물로 끼워 넣었다', '테이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염·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 씨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테이프가 범행 현장에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경찰의 사건 당일 압수 조서를 보면 이 테이프가 목록에 기재돼 있다"며 "또한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경찰관이 테이프를 수거했다는) 소파 위에 그 테이프로 보이는 검은색 뭉치가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프의 오염·훼손 가능성에 대해서도 "테이프에는 혈흔이나 지문이 없어 수사 초기에는 중요도가 낮았던 증거"라면서 "경찰은 오염을 막기 위해 증거물 5개를 지퍼백에 담고 다시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실에 뒀다가 이후 국과수에 보냈다고 하는데, 이는 국과수 연구원의 증언과도 일치한다"고 했다.
"안산에 가본 적도 없다"는 이 씨의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씨의 과거 범죄 전력과 행정기관 방문 이력 등을 토대로 설득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미 전북 전주와 경기도 일대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강간과 강도, 절도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며 "여기에 범행이 일어난 2001년에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인감증명을 발급받았고 범행 당일인 그해 9월 8일에는 안산에서 차량 이전 등록 신고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자신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며 영구적인 격리를 명하자, 이 씨는 "네"라고 짧게 답변하고 교도관을 따라 구치소로 향했다.
장기 미제로 남을뻔한 25년 전 '안산 부부 강도살인' 사건
이 사건은 2001년 9월 8일 오전 3시께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한 연립주택에서 발생했다. 이 씨는 공범과 함께 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해 안방에서 자고 있던 A씨(당시 37세) 부부를 흉기로 찌르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침입자를 보고 격렬하게 저항한 남편 A씨의 목과 심장 등을 20여차례 찔러 살해했다. A씨의 부인(당시 33세)도 흉기로 찔러 큰 상처를 입히고, 이들은 현금 1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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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으나,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강도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없어지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이후 진보한 과학수사를 통해 경찰과 검찰은 2017년 특수강간 혐의로 징역 13년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던 이 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결정적인 단서는 당시 현장에서 수거됐던 검은색 절연 테이프였다. 이 테이프에서 검출된 DNA가 25년 전 미제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는 실마리가 됐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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