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전력 수요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예비율이 5%대로 내려서면서 일부 지역의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제 에너지 대책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의 난방기 사용을 낮에 2회 중단하고 지하철 운행간격을 1~3분 늦추며 백화점 등 에너지 다소비 건물의 실내 온도를 20도 이하로 규제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오죽 급박했으면 이런 행정 조치를 동원할까, 그 고심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대책에 긴박성은 없고 내용은 생뚱맞다. 한파가 한 달 이상 계속된 뒤에서야 대책이 나온 것이 우선 그렇다. 시행시점을 다음 주인 24일로 잡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민간 업체들의 협조를 받기 위한 행정절차로 시간이 걸린다지만 그동안 난리법석만 벌였지 무엇을 했는가. 미리 손을 써서 발표 후 바로 시행에 들어갔어야 옳다.
또 전열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업체들의 과대광고를 막겠다는 것이나 전열기의 에너지 가격 표시제를 시행하겠다는 조치 역시 긴박성과 실효성을 결여하고 있다. 백열구를 발광다이오드(LED)로 바꾸는 계획만 해도 여러 번 나온 메뉴다. 정부는 말로만 에너지 절약을 외쳤지 실제 LED 대체 사업 등은 손 놓고 있는 바람에 지지부진했다. 전력요금을 눌러 놓고서 이제 와서 낮은 요금 탓만 하는 모습도 안쓰럽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수급 계획 자체가 자꾸 틀려나간다는 점이다. 2020년 나라 전체의 전력 수요와 최대수요치를 2년만에 다시 고쳐 이번에 13%와 24% 각각 늘려 잡은 게 하나의 사례다.
사고 대처능력도 없다. 어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출근길에 두 번이나 고장나 대 혼잡이 빚어졌다. 지난 17일에는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23분이나 정전이 돼 수백억원의 피해가 났다. 그런데도 지하철 고장은 '집전장치의 이상'이라고만 한다. 여수단지 정전은 2년마다 되풀이되는 데도 정확한 이유도 밝히지 못한 채 한전과 업체 간에 입씨름만 벌이고 있다. 지하철이나 공단의 정전 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 진상을 조사하고 국민들을 안심시켜 줘야 한다. 당장의 사태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급과 대책을 잘 세워 문제없이 여유 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아쉽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