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계족산 왕검성-1500년 세월 견딘 철옹성 성벽에 서면 영월읍·동강 한눈에 장관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1500년 세월의 풍파에 짓눌려 금가고 무너져도 굳세게 지켜온 고색 짙은 왕검성에 이끼 자국이 선명하다. 칼로 자른 듯 수직으로 쌓아 올려진 아찔한 성벽 아래로 굽이치는 동강의 물줄기가 힘차게 요동친다. 그 옛날 거란족의 침입을 막고 적의 동태를 감시하던 서슬퍼런 군사들의 예지가 곳곳에 서려있는 성벽위로 사람들은 숨죽이며 걷는다.
영월읍 정양리에 병풍을 친듯 수석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계족산 자락에 오랜세월에도 꼿꼿하게 옛 모습을 간직한 고구려의 산성 왕검성(정양산성)이 있다.
백두대간 함백산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친 한 개의 능선이 두위봉과 응봉산을 거쳐 남한강에 막혀 더 이상 뻗지 못하고 지맥을 다해 험준한 산세를 이룬곳이다.
왕검성을 가기 위해서는 영월읍에서 88번 지방도를 따라 10여분을 달리면 된다. 동강ㆍ서강이 만나 몸을 불린 물줄기가 두어번 굽이치며 단양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산성 탐방은 영월천연가스발전소 옆, 정양마을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원래 산성의 이름은 정양산성으로 기록돼 있으나 주민들은 고려 때 '왕검'이란 장군이 쌓았다 하여 왕검성으로 부르기를 더 즐긴다.
주차장에서 500m쯤 숲길을 오르면 정조대왕 태실을 만난다. 처음엔 발전소 뒤 야산에 있었으나, 일제 때(1928년) 효율적인 태실 관리보전을 명목으로 전국의 태실을 창경궁으로 모아들였을 때 옮겨간 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997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 작은 물길(얼음 깔린 바위 조심)을 두번 건너면 왕검성 안내판이 나온다.
전날 내린 눈으로 미끄러운 산길을 돌아 20여분 오르면 돌무더기 흩어진 산성의 서문에 이른다. 서문 안쪽은 성 내부의 가장 낮은 지대로 꽤 널찍한 평지다. 눈덮힌 성 안은 안개에 잠겨 고요한데, 꿩 한 쌍이 '푸드등' 적막을 깨고 날아오른다. 성곽을 따라 크고 작은, 그리고 여리고 거친 꿩ㆍ노루ㆍ토끼 발자국들이 지천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정양산 석성은 둘레 798보로, 성 안에 샘이 하나 있고 5칸짜리 창고가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성 안에서 기와ㆍ토기 조각이 다수 발견됐다고 한다.
둘레 770여m에 폭 4m, 성벽 최고높이는 무려 11m를 넘는다. 성곽은 최정상인 동남쪽 끝에서 서북쪽 낮은 지대를 향해 사다리꼴로 내리뻗은 모습이다.
둘레는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과 급경사 골짜기다. 급경사지를 활용해 성 외벽은 수직으로 높게 쌓고, 안쪽은 낮게 쌓은 협축식 성벽인데, 일부는 외벽만 쌓는 편축방식이 쓰였다. 멀지 않은 태화산 태화산성과 임계산성, 영춘의 온달산성과 비슷한 구조다.
현재 왕검성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라 성 안과 둘레를 다 돌아 볼 수는 없지만 성벽을 따라 1500여년전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데는 불편함이 없다.
성벽 답사는 왼쪽부터가 수월하다. 가장 먼저 북쪽 곡성의 치성을 만난다. 석공의 혼이 담겨져 있는 휘어지는 성벽의 아름다운 곡선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가다가 만나는 동문 터. 위험을 느끼면서 무너진 성돌을 밟고 밖으로 내려 가본다. 성벽 3m위에 문턱이 보인다. 사다리를 이용해 오르내리는 현문이다. 성벽은 안과 밖으로 쌓았다. 안쪽은 낮지만 밖은 높이가 11m나 된다.
왕검성에서 성문과 성벽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곳이 북동쪽 일대다. 칼로 자른 듯 수직으로 쌓아 올려진 성벽, 커튼처럼 드리워진 자태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자연석을 다듬어 벽돌같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아찔한 인공절벽은 잘 훈련된 특수대원도 감히 침투할 수 없는 철옹성이다.
전망은 동북쪽 성벽과 남서쪽 성벽, 그리고 계족산 등산로가 이어지는 성의 맨 꼭대기 부분이 좋다. 별마로천문대가 선 봉래산과 태화산 쪽 산줄기들이 첩첩이 펼쳐진다. 남쪽 성벽에선 발 아래로 굽이치는 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왕검성에서 태화산으로 가려던 호랑이가 여울 살에 빠져 죽었다는 범 여울도 발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다. 겨울 아니면 대부분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져 있을 경치 들이다.
왕검성에서 계족산 정상 등산로를 따라 40여분 올라가면 과거 석탄을 운반하던 삭도를 만날 수 있다.
대형크기에 직경 2m가 넘는 톱니바퀴 두 개가 고정되어 있는 삭도는 1934년 영월군 북면 마차리 탄광에서 발전소까지 약 12km의 거리에 석탄을 운반했지만 2000년 폐쇄됐다.
삭도의 공중 운반 모양이 솔개와 비슷하다고 해 소리개차라고 불리었으며 우리나라 케이블카의 원조로 알려져있다.
계족산을 산행의 목적으로 찾는다면 정양산성쪽보다는 정양리마을로 올라가는것이 좋다. 가래골 계곡 좌측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가면 우측 아래로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를 내려다보며 산길을 올라 15m 폭포 상단부에서 다시 왼쪽 계류를 건넌다. 이 곳의 폭포는 평소에 수량이 적은 것이 흠이다. 그러나 장마철에는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가장 험난한 남서릉과 칼날능선만 주의해서 지나면 1시간20여 만에 계족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서 닭발모양의 봉우리 4개를 지나 삭도쉼터와 정양산성이 차례로 나온다. 산행 시간은 4~5시간 정도이며 거리는 7.5㎞다. 겨울철에는 산길이 미끌럼틀 수준이다. 아이젠을 준비하는 게 좋다.
영월=글.사진=조용준 기자 asiae@
◇여행메모
△가는길=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진입, 제천IC를 나와 단양-영월방면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한다. 영월 방면 지하차도 지나 동막교차로에서 청령포 방면으로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팔괴교차로지나면 정양리마을이다.
△볼거리=영월에는 역사와 문화유적지가 넘쳐난다. 단종의 넋이 살아있는 청령포를 비롯해 한반도마을로 유명한 선암마을, 선돌, 별마로천문대, 주천강 섶다리 등이 유명하다. 또 영월은 박물관 천지다. 책 박물관을 비롯해 곤충생태 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먹거리=읍내에는 유명한 곤드레밥 전문식당이 즐비하다. 산나물에 밥과 함께 쪄서 나오는 곤드레밥은 양념장으로 비벼먹으면 입안에 맴도는 산나물 향이 그만. 장릉 옆 골목의 장릉보리밥집과 장릉손두부 등도 별미. 또 다슬기향촌(성호식당 033-374-3215)은 상호에 맞게 다슬기해장국이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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