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전필수 기자]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며 예로부터 사람이 70살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이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50살이던 시절의 얘기다.
지난해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79.4세다. 전 세계 101개국 가운데 22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매년 평균 0.28세씩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오는 2020년에는 82.2세가 된다. 평균수명이 이 정도니 100세 노인이 넘쳐날 날이 머지 않았다.
수명은 이처럼 늘어나고 있지만 돈을 벌 기간은 오히려 줄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군대 다녀온 남자 기준으로 27~28세면 취직을 했지만 요즘은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취업재수도 늘면서 사회진출 연령이 높아졌다. 게다가 '사오정'을 넘어 '삼팔육'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용은 불안하다. 55세나 60세 정년은 일반 직장인에게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10년 후 50이 되는 직장인이라면 남은 인생 50년을 불과 20여년 동안 모은 자금으로 버텨야 한다. 은퇴까지 남은 10년, 그저 부지런히 모으는 것만으로 노년을 보장받기는 힘들다. 미리 노후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과거 70살까지 살기보다 더 힘겨운 남은 50년이 될 수 있다.
아시아경제신문은 2010년 연간기획인 2020 재테크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국내 최고의 재테크 전문가들의 서면 인터뷰를 바탕으로 가상 대담을 엮어봤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 센터장, 민주영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투자지혜연구소장이 앞으로 10년간 재테크 패러다임의 흐름을 비롯, 알찬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사회: 오는 2020년의 재테크는 지금까지와 어떻게 다를까요.
- 민주영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투자지혜연구소장(이하 민): 오는 2020년 자산시장에 있어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는 바로 인구구조의 변화일 것입니다. 2018년부터 총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인구 감소는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위축시키면서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동안 인구 증가에 따른 플러스 경제성장만 겪었던 우리나라 역시 이제 인구 감소로 인한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거죠. 이러한 구조변화는 플러스 수익률을 추구하던 자산관리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겁니다. 양적인 확대보다는 질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자산관리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행복'에 기여하는 자산관리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늘어날 거라는 예상입니다.
-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이하 우): 10년 후면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720만명이 은퇴생활을 본격적으로 누리면서 자산관리 양상을 크게 바꿔놓을 겁니다.
경제 잠재 성장률이 현재 4%대에서 3%대로 하락하면서 저금리 현상이 고착되고 서민 경제 역시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상가나 아파트로 구성돼 있는 투자용 부동산의 수익률이 정기예금보다 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20년간 세계 최고로 고령화된 일본사회가 겪는 현상들, 20년간 일본 6대 도시 상가가격이 85% 가량 하락했다든지, 주거용 부동산이 61% 하락했다든지 하는 점들이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 김동엽 센터장(이하 김): 그렇습니다. 주택에 대한 생각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여요.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주택가격 상승이 정체되면서 주택은 더 이상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자산으로 본연의 기능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소유' 보다는 '사용'에 대한 개념이 앞서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적립 중심의 자산관리가 인출 중심의 자산관리로 전환될 거라고 봅니다. 다양한 인출 옵션을 가진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등장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돈을 모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재테크 방법입니다. 따라서 정년 후 일자리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리라 생각됩니다.
정년 후 일자리는 돈 관리와 시간 관리를 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현역시절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만큼, 정년 후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가지려면 미리미리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 '공부-현역-은퇴'가 아니라 '공부-현역-공부-재취업'으로 라이프 스타일이 바뀔 것으로 보는 거죠.
▲사회: 네, 그렇다면 2020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낼만한 투자처는 어디일까요?
- 김: 특정 금융상품을 하나 꼽기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다만 2020년이면 아직은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 수가 정점에 이르고 있다는 점과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여전히 '주식'이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민: 맞습니다. 10년 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투자처는 주식이 유일할 것입니다. 특히 호황과 불황의 반복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일등기업의 주식이 투자자에게 높은 수익을 안겨줄 거라고 봐요. 국내 경제성장률은 줄어들겠지만 해외 이머징시장의 경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줄 것으로 보여 관심이 높아질 겁니다. 결국 주식 중에서도 '해외 이머징시장'의 '일등기업 주식'이 가장 높은 수익을 안겨줄 거라는 결론이죠.
- 우: 이머징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자산 투자가 각광을 받을 거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중소형주, 대형주, 인덱스주식, 가치형주식, 벤쳐형주식 등 다양한 형태의 주식과 부동산, 파생상품, 원자재 등 대체투자형 상품, 하이일드채권 등 다양한 상품들이 인기를 얻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들 상품들은 위험이 높기 때문에 얼마만큼 자산배분이 될 것인가를 미리 짐작하기는 쉽지 않아요.
▲사회: 서두에 잠깐 얘기가 나왔는데, 은행예금과 부동산 시장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 민: 네, 앞서 말씀드린 인구구조의 변화는 자산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인구감소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부분은 부동산 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아까 우 소장님이 일본 상왕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은 더 이상 자산을 불리거나 지키는 수단이 되지 못할 겁니다. 인구감소와 함께 투자도 줄어들면서 금리는 더욱 바닥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거죠. 은행 예금 역시 더 이상 자산관리의 수단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 김: 10년 뒤 금리와 부동산 시장을 예상하라고 하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만 저 역시 고령화 선진국 일본의 상황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일본은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성장성이 떨어지면서 저금리가 고착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가계 금융자산의 80%이상을 60세 이상 노인층에서 보유하면서 자산운용이 보수적으로 돼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금처럼 고령화가 진전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 부동산 시장 역시 과거와 같은 영화(?)를 누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 우: 그렇습니다. 부동산 자산은 커다란 구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총자산의 80%에 달하는 부동산 자산을 금융자산화 하면서 부동산의 고령화 매물이 크게 증가할 것이고, 인구감소로 젊은 부동산 매수자들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요건이 맞지 않게 되겠죠. 금리 하락과 부동산 시장의 불균형 같은 현상들은 2020년을 넘어서 계속될 거라고 보거든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걸로 예상합니다.
▲사회: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는 2020년 은퇴 해당자들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김: '돈은 줄고 시간은 늘어난다'. 은퇴 생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은퇴준비에 있어서는 '자산관리'와 '시간관리' 둘 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이요.
자산관리 측면에서는 자산을 연금화 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해 들어 '강남 아줌마'들의 국민연금 임의가입이 급증한다거나,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주택연금 가입자가 급증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투자자들도 서서히 연금의 중요성을 깨달아가 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하우스 푸어' 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동화 되지 않는 자산은 오히려 골칫덩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정년후 노후생활에서는 자산이 많은 사람보다 현금흐름이 좋은 사람이 부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자산'을 키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1세로 평균수명 80세보다 9살이나 적다고 합니다. 아프면서 살아야 하는 간병 기간이 9년 가까이 된다는 말인데, 생활비와 함께 의료비도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의료비는 언제 병이 발생할 지도 모르는데다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갈 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저축이나 투자보다는 보험으로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우: 지금부터 재무적, 비재무적 준비를 차근차근 해 가야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일견 길어 보이지만 은퇴준비는 20~30년간 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그다지 여유가 충분한 시간은 아닙니다.
좀 더 효과적인 은퇴생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퇴계획(retirement planning)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은퇴후 생활비, 의료비, 주거계획, 취미·봉사·종교생활, 간병계획, 상속계획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은퇴후 생활이 은퇴시점부터 70대 중반까지 '활동기', 7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회고기', 70대 후반부터 남편 사망시점까지 '남편 간병기', 이후 '부인추가 생존기'라는 4단계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을 쌓아야 하는 거죠. 행복의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은퇴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산배분 전략 변경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산구성비는 부동산 80%, 주식 5%. 채권 15% 가량입니다. 미국의 경우 부동산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에 불과하니 우리가 얼마나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은퇴생활을 시작하면 노후생활용 아파트는 크지 않아도 되며, 부동산 자산에서는 생활비가 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부동산 자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시키는 자산배분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은퇴자산의 구성비는 '부동산 30%, 금융자산 70%' 정도가 될 것입니다. 금융자산은 주식, 채권, 현금, 연금, 보험자산으로 잘 분산돼야 하고요. 그래야 고령화, 저금리 시대를 견딜 수 있고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점차 현금이 필요한 노인생활을 잘 지낼 수 있지 않겠어요.
- 민: 앞으로 10년 정도 은퇴를 앞둔 사람이라면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3층 구조를 갖춰야 합니다. 연금상품은 노후준비에 가장 적합하고 손쉬운 방법이죠.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연금구조를 점검하고 이를 적극 보완해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 부인은 물론 가족과도 잘 지내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에 더욱 충실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김: 맞습니다. 정년 후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함께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은 바쁘고 피곤해서 못하지만, 은퇴를 하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서로가 바쁜 시간을 내어 함께하려고 노력할 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가족들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 그렇습니다. 건강, 취미, 봉사와 같은 비재무적인 면 역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막연하게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최소한 5년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미리 준비하면 좀 더 행복한 은퇴생활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물론 이런 비재무적인 면을 확실하게 선호할 경우 조기은퇴, 부분적은퇴, 점진적 은퇴와 같은 다양한 은퇴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회자: 그렇군요. 말씀 중에 '자산의 연금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확정기여형(DC), 확정급여형(DB) 등 퇴직연금의 여러 가지 형태 중 10년 뒤 연금시장 주도권은 어떤 것이 잡고 있을까요?
- 우: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 연금시장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이 세 가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중 퇴직연금시장은 과거 법정 퇴직금에서 퇴직연금으로 진화되면서 DB형, DC형, IRA형으로 나눠지고 있어요.
올해 10월 근로자수를 기준으로 퇴직연금의 구성현황을 살펴보면 DB형 64.9%, DC형 31.4%, IRA형 3.7%로 구성돼 있습니다. 적립금 규모를 기준으로 봐도 DB형 66.8%, DC형 20.8%, IRA형 12.4%로 구성돼 있죠.
결국 근로자 수나 적립금의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DB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1년 전에 비해 그다지 크게 변화하고 있지 않아요. 결국 DC형 위주로 퇴직연금이 이뤄져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퇴직금과 같이 회사가 일정한 퇴직금을 보장하는 DB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중간 정산을 하거나 은퇴한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자금이 들어가는 IRA형이 급증하는 등 변화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 퇴직연금시장은 은퇴자들이 증가하고 기업의 경영환경이 유연한 퇴직연금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해갈 것입니다. 결국 주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DB형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DC형과 IRA형이 증가하는 현상이 강해 질 것으로 보는 거죠.
- 민: 저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연금시장의 주도권은 DC형이 잡을 것으로 봅니다. 장기적인 은퇴준비에 있어 가장 큰 적은 인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이겨내는 최선의 방법은 적극적인 투자죠. 상품특성상 DB형보다는 DC형이 투자에 더욱 가까우니까요.
- 김: 우 소장님, 민 소장님 말씀대로 지금은 전체 시장의 70% 정도를 DB가 차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DC와 IRA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초기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단계에서는 근로자들이 기존 퇴직금과 유사한 DB 제도를 선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근로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제도를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연봉제와 임금피크제와 같은 유연화된 임금제도를 실시하는 사업장이 늘어나는 것도 DC가 늘어나는 배경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로자가 한 직장에서 평균 근속연수가 5.8년인 점을 감안하면, 직장을 옮길 때마다 퇴직금을 통산하기 위한 개인형 IRA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현재 퇴직연금제도는 마지막에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IRA로 퇴직급여 적립금을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IRA계좌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유리 기자 yr61@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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