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하는 충무로산책
# 토요일 밤 9시, 브이 포 벤데타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악화됐다.
배가 더부룩하다 싶으면 어느새 무시 못 할 소음과 함께 가스가 배출됐고 진한 여운을 남겼다.
가스가 가득 찬 배에 심지를 박아 불을 붙이면 ‘빵’하고 폭발할 게 분명했다.
좁은 거실에 채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소고기와 김치, 마늘, 고추장, 된장 등속)이 둥둥 떠다니는 듯 했다.
조카 둘과 우리 집 작은 놈이 거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순전히 TV 때문이었다.
저녁을 마친 우리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란 영화를 보는 중이었다.
(‘피가 튀는 복수’ ‘대를 이어 죽고 죽이는 앙갚음’으로 번역되는 제목의 그 영화를 우리는 ‘쿡(QOOK)’으로 봤는데, 철자는 다르지만 왜 하필 그 시점에서 '쿡(cook)'이었을까?)
‘메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2005년 만들어 2006년 개봉한 다소 ‘철지난’ 영화였다.
포만감에 젖은 일가족이 함께 시청하기에 무난했으나 132분씩이나 꼼짝없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야 한다는 게 큰 곤욕이었다.(물론 나를 제외한)
이모부가 굉음과 함께 눈에 보일 듯 진한 가스를 엉덩이로 토해낼 때마다 조카들은 잔웃음으로 화답하곤 했지만, 그 빈도가 잦아지자 조금씩 나와의 거리를 벌려갔다.
가장 곤란한 건 아내와 우리 집 둘째로 보였다.
마치 자신들의 잘못이기라도 한 양 부끄러워하며 조카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그닥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자연스런 생리현상 아닌가?
그것도 식구들만 모여 있고. ‘우리’만의 밀폐된 공간이고. 무엇보다 내 카드로 결제된 소고기를, 나만 먹은 게 아니라 함께 먹었고.
(‘먹을 食’과 ‘입 口’를 합쳐 ‘식구(食口)’ 아닌가? 인풋(input)을 함께 한다면 아웃풋(output)도 나누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닐까?)
썩 잘 지어진 집이 아닌 탓에 층간 방음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뭐 이 정도야 어떨까 싶기도 했다.
혹 아랫집까지 전달된다 해도 설마 그 소리를 그 소리와 어떻게 구별해낸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방음’은 아니어도 ‘절대 방취’는 가능하지 싶었다.(옆집이나 아랫집의 유사한 냄새를 경험한 추억이 ‘다행히’ 없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다들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
바로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너희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이냐? 수능이 끝났으니 곧 원서를 써야 할 텐데 전공은 어찌 할 것이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느냐? 당장 올 겨울에는 어떤 책을 읽을 계획이냐? 등등 꼬치꼬치 따져가며 밥상머리 잔소리를 해대던 ‘대한민국 50대 가장’이 자기 뱃속 하나 건사하지 못하여 노골적으로 뱃속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데 왜 아니 통쾌할까.
극중 상황을 감안하면 도저히 웃음소리가 불가능한데도(피가 튀는 복수 영화라는 걸 기억하자) 스토리와 무관하게 이따금이나마 일가족(물론 한 명은 빼고) 모두 웃고 즐긴 건 영화가 아닌 바로 내 덕분이었던 것이다.
# 밤 11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참혹한 2시간 12분짜리 영화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참담한 현실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은 모드전환이었다.
가장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가 ‘장난’에서 ‘걱정’으로 바뀐 것인데,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우선 개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 걸고 고군분투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영화 속 주인공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좀 더 깊이 이해했다면 그 어떤 명분(효율성과 통제를 통한 사회통합 등)을 내걸든 전체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는 감독의 메시지에 공감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보, 뭘 잘못 먹은 거 아냐?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닐까?”
처음 이런 투의 말을 들었을 땐 냉소나 비꼼, 빈정거림의 일종으로 여겼다.
소음과 악취에 대한 복수 또는 앙갚음쯤이려니 했다.(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인풋을 함께 하는 우리는 ‘식구’ 아닌가? 게다가 지금 내 뱃속의 음식은 누구 작품이지?)
그러나 아내 입에서 ‘구제역’이란 단어가 나오면서부터 상황이 돌변했다.
조카 둘과 아들까지 아내의 걱정에 가세했고, 당장 ‘119’로 전화 걸어 앰뷸런스라도 부를 태세였다.
(그들은 나를 ‘구제역에 걸린 소’로 여기는듯 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한 식구지만 이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레드 테이프’가 그들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내가 소띠란 사실도 불리했다. 눈앞에 잠깐이지만 선혈이 낭자한 붉은 테이프가 어른거리기도 했던 거 같다.)
이쯤 되자 나 역시 슬그머니 걱정이 됐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러다 큰일 치르는 거 아닐까?’
문득 이런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정말 구제역과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구제역에 관한 콘텐츠는 차고 넘쳤다.
무엇을 먼저 볼까 잠시 망설이다 관련 기사부터 읽기로 했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사이트는 경험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공급자 마인드가 강하고(어디서 어떻게 찾았는지 어휘도 잘 쓰지 않는 것들만 용케 골라 순서도 주어-동사 순이 아니라 뒤죽박죽 섞어놓기 십상이고), 네티즌 의견은 이해하기는 쉬운데 신뢰가 약하고(이념편향이나 감정이입이 심하고), 관련 기사는 위 두 가지 문제점이 뒤범벅돼 있지만 그래도 직업 상 매일 접하는 거니까 보기에 편할 것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기사가 읽기에 편할 것이란 생각은 맞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구분이 애매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물리고 물리는 기사의 행렬.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내용도 대동소이했다.
‘어디까지 확산됐고, 몇 마리를 살처분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구제역과 내 증상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왕좌왕 하다가 ‘국립수의과학검역원(www.nvrqs.go.kr)’을 만난 건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그 곳에 ‘구제역 속보/구제역이란?/Q&A/축산농가 방역수칙’ 등이 정리되어 있었다.
먼저 구제역과 내 증상의 공통점을 찾기로 했다.
‘체온상승, 식욕부진, 침울, 우유생산량의 급격한 감소.’
‘침울’을 제외하곤 내 경우와 확연히 달랐다.
‘발병 후 24시간 이내에 침을 심하게 흘리고, 혀와 잇몸 등에 물집이 생긴 것을 관찰할 수 있으며,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여기까지도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다.
‘물집은 발굽 사이와 젖꼭지 등에서도 관찰된다. 물집은 곧 터져서 피부가 드러나고 짓무르고 헐게 된다.’
발가락 사이를 살펴보고, 혹시나 해서 거울 앞으로 달려가 젖꼭지까지 들여다봤지만 무관하다.
그래도 의심쩍어 전염경로를 찾아봤다.
‘①소와 돼지 등 감염 동물의 수포(물집) 액이나 침, 유즙, 정액, 호흡공기 및 분변(쉽게 말해 똥)과의 접촉이나 이를 함유한 식품 등에 의한 전파(직접감염) ②감염지역 내 사람(목부, 의사, 인공수정사 등), 차량, 의복, 물, 사료, 기구 및 동물 등에 의한 전파(간접감염) ③육지에서는 50㎞, 해상에서는 250㎞ 이상까지 공기를 통한 전파(공기감염)’
내가 먹은 소고기를 의심할만한 근거는 ①번 (직접감염) 가운데 ‘이를 함유한 식품’ 정도였으나 크게 걱정할 건 아닌듯했다.
그렇게 구제역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섭취해가던 중 결정적 단서를 만났다.
‘구제역 Q&A’란 코너에서였다.
‘구제역은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므로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구제역 발생지역에서 구제역에 걸린 가축과 접촉한 사람 중에서 구제역에 감염된 사람은 없습니다. 또 도축장에서는 질병 우려만 있어도 도축을 하지 않으며, 도축시 수의사가 임상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의 경우는 도축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제역에 걸린 가축의 고기가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가축은 도축 후 예냉 과정에서 고기가 숙성되는데, 그 과정에서 산도가 낮아지므로 고기에 있는 구제역 바이러스는 자연 사멸됩니다.(ph 6이하 또는 9 이상에서 사멸) 이와 함께 구제역 바이러스는 섭씨 50℃ 이상의 온도에서 파괴되기 때문에 고기를 조리하거나, 살균한 우유 역시 구제역 바이러스가 모두 사멸됩니다. 때문에 시중 육류나 유제품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없습니다.’
중간 중간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섞여 있고, 논리적 비약도 적지 않아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내 무식의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정부 측 사이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접근이 쉽지 않다.) ‘사람에게 전염되지는 않고, 지금까지 그런 사례도 없었다’니까 일단은 안심했다.
그렇게 해서 구제역에 대한 의심과 공포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그러나 뱃속은 여전히 불편한 채) 침대로 돌아갔다.
그런데 결국 그 다음 날 아침 난감한 상황이 터지고 말았으니...
(3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종인 본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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