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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과 어느 일가족의 참담한 2박3일①

시계아이콘03분 56초 소요

당신과 함께 하는 충무로산책

구제역과 어느 일가족의 참담한 2박3일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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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일 낮 12시, 집 앞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다.
늘 그렇듯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토요일 오전 11시쯤 ‘아점’으로 소호정에 가서 국수를 먹고 오는 길이었다.
(소호정은 안동국수를 파는 곳인데, 안동국수에 관해서는 뒷날 집중적 고찰이 필요할듯하여 오늘은 언급을 피하고자 한다.)

거의 집에 다다랐을 무렵이다.
배가 부를 만큼 불렀고,(왜냐면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열 걸음만 더하면 집에 들어갈 수 있었고, 집에 가면 침대가(전날 밤 내 체온이 채 식지 않은, 어쩌면 아늑했던 꿈속의 그 느낌까지도...) 있을 것이고, 그대로 몸을 누이면 내리 열 시간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환상에 젖어 어정어정 걷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툭 던진다.

“아, 농협마트에 잠깐 들러야 하는데...”
“.......”
(아, 침대가 기다리고 있는데, 열 걸음 밖에 안 남았는데...)


일단 못들은 척 하고 몇 걸음 더 걷는다.(대개 실패지만, 간혹 먹힐 때도 있으니까.)


“저녁에 걔들 오라고 했잖아, 뭘 좀 사놔야 할 텐데....”
듣기에 따라서는 분명 혼잣말이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경우 ‘강요’ 또는 ‘지시’로 해석하는 게 좋다.


“오늘인가. 조카들이 와서 저녁 먹는다는 날이.... 근데 마트엔 이따 오후에 가도 되는 거 아닐까.”
이 말도 듣기에 따라 분명 혼잣말이지만, 이 경우 가벼운 ‘의사표현’ 내지 ‘저항’에 해당한다. 지금은 배부르니 집에 가서 반쯤 누워 TV를 보거나, 여의치 않으면 온 몸으로 눕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오후에는 좋은 거 만나기 힘들 텐데...”


더 이상의 저항은 무리다.


‘강요’ 또는 ‘지시’를 어기고 집에 들어가 봐야 편안한 낮잠은 기대 난망이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다시 안방에서 거실로, 내가 가는 곳마다 청소기가 윙윙거리며 따라붙을 것이고, 청소가 끝나면 ‘쿵~쾅~’ 설거지 소음이 요란할 게 뻔하다.(‘청소기’보다 ‘설거지’가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아내는 잘 안다. 기계음에 감정을 얹기는 쉽지 않지만, 설거지는 다르다. 못으로 유리를 긁는 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만 하면 상대를 공황 또는 각성으로 몰아가기 충분한 것이다.)


“좋은 거? 뭘 살 건데?”


“애들이 고기를 좋아하니 소고기를 좀 살까 싶은데. 오후에 시간을 잘 못 맞추면 사고 싶은 부위가 없거든.”


그렇게 해서 끌려간 곳이 남서울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다.


혹, 이런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신혼여행도 아니고, 마트에 부부가 함께 가라는 법이 있나? 그쯤에서 찢어져 각자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냐?’라고.


정확한 지적이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내도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아내가 필요한 건 소고기를 선별하는 내 안목이나 소고기를 집까지 운반하는 내 노동력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내 호주머니 속에서 잠시 휴면중인 신용카드를 노리고 있다.
‘그냥 꺼내서 줘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까짓 사인이야 부부지간에 누가 하면 어떨까, 아무 상관없는데 문제는 원칙이다.
어떤 원칙이냐고?


‘내 신용카드는 내가 쓴다’는 원칙, 옛말도 있지 않은가?
‘자동차 키와 신용카드는 남에게 주는 게 아니’라는.
('역지사지'로 풀면 간명해진다. 한번 생각해 보시라. '남편에게 카드 맡기는 아내'를 직접 보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지.)


# 마트 안 정육코너


아내 말이 맞았다.
마트 정육코너에는 고기가 즐비했다.


전날 팔다 남은 건지, 아니면 남을 걸로 예상했던지, 20% 정도 할인된 가격표를 원래의 가격표 위에 덧붙여 놓은 소고기도 있었다.


구제역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그 때였다.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에 감염된 소가 확인된 게 벌써 일주일 전.’
‘국내에서 구제역이 확인된 건 2002년 이후 8년 만에 처음.’
‘경북지역에 구제역 도미노 확산..경북 축산업 붕괴 위험.’


이런 뉴스를 본 기억이 난 것이다.


잠깐 참고로 말하면 2002년 5월초부터 6월 중순까지 경기 안성 등지에서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소와 돼지는 16만 마리에 달했고, 이번에(발견시점으로 2010년11월29일)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예천과 영양, 봉화, 영주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불과 열흘 사이에 10만 마리의 소·돼지가 살처분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살처분’이란 살벌하고도 낯선 단어는 법적 용어다. 혹 관심이 있는 분은 ‘가축전염병예방법 제22조 사체의 처분제한’이란 항목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또 살처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현장의 느낌을 접하고 싶은 분들은 농민신문(www.nongmin.com)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연말 잦은 망년회로 소고기를 좀 멀리하고 싶은 분들, 소고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너무 비싸 자주 못 드시는 분들, 다이어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소고기 섭취를 줄이고자 하는 분들께 폭넓게 추천한다.)

한꺼번에 용도 폐기되어 생석회를 하얗게 뒤집어쓴 수 십 마리의 소들이 땅 속에 묻히는 장면이 눈앞의 싱싱한 소고기 덩어리와 뒤엉키자 복잡 미묘한 심적 갈등이 야기된다.


‘근데, 저걸 먹어도 되는 걸까?’


실례를 무릅쓰고 호기심 충족에 나서기로 했다.
(‘까딱 잘못하면 조카 둘 포함한 우리 일가족이 생석회 뒤집어쓰고 땅에 묻히는 게 아닐까? 이 추운 날에...’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육류코너 담당 직원에게 이렇게 운을 뗐다.


“구제역이 창궐하고 있는데, 소고기를 먹어도 되는 거죠?”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식의 ‘힐책’ 또는 ‘부정’ 대신 “되는 거죠?”라고 ‘동의’를 구한 건 ‘먹겠다’는 확신 내지는 ‘먹고 싶다’는 욕망의 표출이 아니라 순전히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마블링이 환상적인, 육즙을 가득 품고 있는 냉장고 속 소고기를 중간에 두고 건너편에 서 있는 판매원이 (그날따라) 아주 싹싹했기 때문이었다.


“아, 물론이죠,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사람은 절대 구제역과 무관해요. 사람에게 전염이 안 된다는 거죠. 또 구제역 바이러스는 섭씨 50도 이상만 가열하면 깔끔하게 사라지니까 아무 걱정 마세요.”


냉장고 뒤에서 하얀 캡과 하얀 비닐 앞치마를 착용한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앞치마 뒤로 언뜻언뜻 보이는 아래위 옷도 흰색이다!


흰색을 택한 건 손님과 위생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혔다.
평소라면 100% 신뢰를 얻을만한 복장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글쎄..., 생석회가 하얀 것은 물론 구제역 방역에 나선 수의사와 공무원, 자원봉사자들 모두 흰색 옷을 입고 있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일까?
혹시 대중 앞에서는 무조건 흰색으로 통일하기로 그들과 사전모의라도 한 것일까?


샘솟듯 솟구치는 의문으로 망설이고 있는데 판매원이 마지막 일격을 날린다.


“구제역으로 소들이 대량 살처분되고 있는 건 이미 알고 계시죠? 그러고 나면 소고기 사먹기 힘들지 않겠어요? 공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오를 테니까요.”


“.......”


앞으로 당분간은 소고기 맘껏 먹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수급에 근거한 날카로운 예측이었다.
(위아래 검은 등산복에 검은 등산모를 쓰고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신문사 경제부에서 오래 일했다는 것과 그 옆의 여자가 그가 쓴 기사로 먹고 산다는 걸 그녀는 어떻게 알고 수요와 공급이란 경제적 논리로 설득에 나선 것일까?)


과학에 기반을 둔 판매원의 두 가지 신념(자연과학에 근거한 ‘구제역과 인간의 소고기 섭취는 무관하다’는 믿음과 사회과학 방법론을 통해 유추해 낸 ‘앞으로는 양껏 먹기 힘들어진다’는 확신)에 동화돼 우리는 아롱사태와 살치살을 중심으로 소고기를 잔뜩 샀다.
(‘지름신’은 명품코너 주변에만 어슬렁거리는 게 아니다. 육류코너까지도 폭넓게 관장하고 있다.)


# 토요일 밤 7~8시 우리 집


그날 저녁 일가족 다섯은 소고기 밥상에 머리 파묻고 실컷 먹고 즐겼다.


상추에 고추장 찍은 마늘과 김치를 얹어 싸서 먹기도 하고, 상추가 귀찮으면 소금과 후추를 참기름에 말아낸 기름장에 찍어먹고, 좀 질린다 싶으면 된장과 고추장, 마늘 등을 비벼낸 쌈장을 발라 먹기도 했다.


마블링이 환상적이었던 살치살 구이는 고소했고, 아롱사태 구이는 쫄깃하고 담백해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소고기는 모름지기 입안에서 살살 녹아야 한다’고 믿는 조카 둘과 우리 집 둘째는 살치살에 환호했고, ‘고기는 씹는 맛’이란 속담을 신봉하는 나는 아롱사태에 작약했다.


밥상에 소고기와 씹는 소리는 가득 했지만, 구제역은 어디서도 찾기 힘들었다.
그 누구도 구제역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배가 남산만큼 불러오고, 소 기름기에 신물이 날 즈음, 우리는 만장일치로 과일을 먹기로 했다.
이윽고 사과와 감이 나왔고, 감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나는 허겁지겁 두 개를 해치웠다.


토요일 식사는 그걸로 완결됐으나,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기분좋은 포만감이 감당하기 힘든 가스로 인해 더부룩한 불쾌감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으니...


그 때가 대략 늦은 9시쯤이었으리라.


(2편에서 계속됩니다)


☞ 박종인의 당신과 함께 하는 충무로산책 보기






박종인 본부장 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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