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성곤·지연진 기자]부자감세 철회 논란으로 한나라당 안팎이 시끄럽다. 현 정부의 정체성을 뒤집는다는 반발 속에서 당 지도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부자감세 논란은 본질적으로 차기 대선을 겨냥해 한나라당이 좌(左)클릭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차기 대선 전략과 관련, 당내 개혁·보수파간에 본격적인 정책논쟁의 막이 올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커지는 차기 대선 위기감..."산토끼를 잡아라"
오는 2012년 대선까지 아직 2년여가 남았지만 한나라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대세론에 안주하며 이대로 가다가는 정권교체가 불가피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나라당 개혁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이 한국정책과학연구원(KSPI)에 의뢰해 지난 16~17일 전국 성인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다시 한 번 집권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38.4%에 불과했고 61.6%는 '다른 정당으로 바뀌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정권교체 욕구는 특히 여론주도층인 40대(69.6%)가 가장 높았고 차기 대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과 정치적 텃밭 영남에서도 정권교체 요구가 각각 60.9%와 59.2%로 높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충격적인 결과다. 중간층을 확보하지 않으면 사실상 정권재창출은 물거품이 될 수 있도 있는 것. 정두언 최고위원 등 당내 개혁파들은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등 부자감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최근 지도부 회의에서 10여 차례나 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최고위원은 29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세계적으로 어느 정당이나 중도로 가야 집권할 수 있다"며 "한나라당도 중도로 좌클릭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최고위원은 당 일각의 소득세 인상, 법인세 인하 방침 유지 주장과 관련, "법인세는 기업의 투자를 늘리거나 성장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인하해도 성장률이 올라가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며 "우리나라는 기업에게 세금을 낮춰줘도 (기업은) 현금만 쌓아놓는다. 기업에 세금을 줄여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대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법인세 인상을 주장했다. 서병수 최고위원, 정희수 의원 등 사회양극화에 따른 복지수요와 국가부채 문제를 감안해 감세정책의 재검토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성태 의원도 "감세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감세정책 철회를 검토하려는 것은 중도개혁보수정당으로서 노선을 혁신하려는 우리로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MB노믹스 왜 파기하나? "집토끼도 놓칠라"
부자감세 철회 문제와 관련해 당내 보수파들의 반대론은 강경하다. 감세정책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공약으로 이른바 MB노믹스의 상징이다. 부자감세를 철회하자는 것은 현 정부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마디로 산토끼(중간층)을 잡으려다가 집토끼(전통적 지지층)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 실제 재계에서는 부자감세 철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세법개정안을 다룰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강길부 의원은 "감세철회는 한 두 사람이 주장한다고 해서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고 나성린, 유일호 의원 등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나 의원은 "중장기적으로 감세를 통한 성장유발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해야 한다"며 소득세와 법인세 감세 유지를 주장했다.
청와대 역시 부정적인 반응이다. 기본적으로 당내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감세안이 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라는 점에서 감세철회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 확고한 상태다. 아울러 MB노믹스의 설계자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역시 감세철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당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자감세 철회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으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법인세 인하는 예정대로 추진하되 소득세 감세는 철회해야 한다는 중재안도 등장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재정 적자가 악화되고 있는 만큼 감세정책 점검이 필요하다. 기업과 관련한 법인세를 손본다면 혼란을 줄 수 있지만 소득세 부분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준표 서민특위위원장은 "소득세 감세는 철회할 수 있지만,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세 감세는 그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한구 의원도 "법인세는 경쟁국보다 세금이 너무 많으면 국내 기업이 나갈 우려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소득세는 최고 세율이 8000만원 정도까지만 구별을 하고 있는데 1억이나 1억2000정도로 한 구간 더 만들어서 조금 부담해주며 좋겠다"고 말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진보성향 유권자의 증대와 무상급식 등 복지공약에 대한 유권자의 호응을 고려해 감세철회 주장이 나오지만 촛불시위 등 위기국면에서도 여권을 지지해온 전통적 보수층의 이탈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결국 치열한 공방 속에서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타협안 찾기로 흐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곤·지연진 기자 s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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