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달중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하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한나라당이 조 청장의 임명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부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하면서 차명계좌 특검 문제가 9월 정기국회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논란은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30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에) 자신이 없다면 현재 고발돼 있는 조 청장을 임명할 수 있겠냐"며 "청와대에서 차명계좌 존부에 대한 자신이 있으니까 임명한 것 아니냐"고 해석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다만 그는 차명계좌 존부 여부에 대한 정보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말하지 않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같은 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한 발 나아가 "우리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할 생각은 없고, 저쪽(민주당)에서 하자고 하면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차명계좌 논란의 불씨를 되살려 조 청장에 대한 야권의 파상공세를 피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특검을 추진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특검이 아니라 '별검'을 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해 서거하신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민주당이 지켜낼 것"이라며 맞받아쳤다. 조영택 대변인도 "집권여당 최고위원 위치에 있는 분이 마치 과거 초임검사 시절에 자신이 상대했던 시정잡배들이나 할 수 있는 모함과 의혹 제기 식의 치졸한 발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 청장의 임명에 대한 민주당 속내는 복잡하다. 8·8 개각과 함께 '김·신·조'(김태호, 신재민, 조현오)를 일찌감치 낙마 대상자로 거론하면서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사퇴라는 '대어'를 낚는데 성공했지만 조 청장의 임명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총리 후보자는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표결처리해야 하기에 적극 저지가 가능하지만, 장관과 청장 후보자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는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조 청장의 퇴진에 몰입할 경우 자칫 여론의 역풍도 배제할 수 없다. 인사청문회로 8월에 끝마쳤어야 하는 결산 심사도 9월로 연기된 상태이며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는 국정감사 준비도 시간이 촉박하다. 박 대표의 31일 교섭단체 정당대표 라디오연설에서 조 청장에 대한 발언이 빠진 것도 민주당이 청문회 정국 출구를 마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당 관계자는 "조 청장은 모든 야당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렸고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시기가 문제지 퇴진은 불가피하다"며 "정기국회가 열리면 상임위에서 다뤄질 수 있고 국감에서는 이 문제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와 국감을 조 청장의 '2차 인사청문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청문회에서 제기됐던 각종 의혹을 재조명하고 추궁해 자진사퇴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9월 정기국회 대정부질문과 이어진 국정감사에서 조 청장을 '식물청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달중 기자 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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