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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DNA] "시간약속도 못지키면 무슨 큰일을 해" 신뢰경영 한길


재계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DNA서 찾는다 대림산업 이재준 회장
1939년 22살에 부평역 앞 부림상회 창업
개발 붐 '선견지명' 건자재사업 탄탄대로
60년대 고속성장 국내업체 도급1위 등극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양복을 맞출 때는 꼭 맞는 것보다 좀 헐렁하게 맞추게. 크면 줄여 입을 수 있어도 작으면 늘릴 수가 없거든. 매사를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네."
"한평생 살아오면서 나는 이것만은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또 실천해 왔지. 그것은 약속, 시간 약속이야. 제일 쉬운 시간 약속도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큰일을 하겠는가."
"한번 늘린 살림은 줄이기 어렵지만 작은 살림은 늘이기 쉽지. 분수란 바로 그런 것이야."
"부지런해야 쉬는 시간도 있는 법이야. 게을러 빠져서야 어디 한가한 틈을 얻을 수 있겠나."
"젊은이에겐 패기가 있어야 돼. 지시나 명령에 맹종하는 것보다는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이를 밝히고 자기의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젊은이라야 장래 희망이 있어."

대림그룹 창업자 수암(修巖) 이재준 회장. 생전에 측근들에게, 또는 경영회의 중에 한 마디씩 거들던 수암 이재준의 이같은 말은 어느 것이나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절도 있게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언설(言說)일 터이다. 수암은 이러한 촌철살인의 경구(警句)들을 어려서 어른들한테 들은 말을 그대로 흉내 냈을 뿐이라고 둘러대지만, 수암이 평생 사업 경영의 기본요건으로 '정직'과 '성실', 그리고 '신용'을 강조하게 된 것은 대부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부친은 늘 그에게 "사람은 널리 사귀되 쉽게 버려서는 안된다",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은 반드시 지켜라", "사람 됨됨이를 보는 안목 이야말로 기업 성패의 관건이다"는 등 상인이 갖춰야 할 자질을 익히도록 독려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수암은 사람을 바로 쓰기 위해 공정한 인사를 철칙으로 삼았고 거래에 있어서도 정실이 끼어드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슬 푸른 제3 공화국 시절, 청와대로부터 들어온 인사청탁을 고심 끝에 물리쳤던 일화일 것이다. 훗날 수암은 "내가 사장이었다면 몰라도 아랫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입장에서 인사청탁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흔히 이재준 회장을 두고 말할 때 그 바로 손위 형인 운경(雲耕)과 비교하기도 한다. 한 형제로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오면서도 선조로부터 이어 온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뿌리내려 정계와 재계에서 각자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을 받으며 이 나라의 거목으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수암 보다 3세 위인 운경은 제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7선 의원이었다. 국회 의장을 역임하며 헌정 발전에 기여했으며 1952년에는 최연소 상공부 장관으로서 전후 경제 부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같은 시기 수암은 보통학교를 마직막으로 사업 일선에 투신, 일제시대에는 목재업으로 크게 성공했고 해방 후에는 건설업으로 한국 경제 발전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업적 못지 않게 이 두 사람은 '정치'와 '기업'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자기 중심을 갖고 가장 한국적인 처세의 모범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대쪽같이 곧은 성품과 부정과 불의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런 면모는 물론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과 말을 아끼면서도 기지 넘치는 언행들은 난형난제(難兄難弟)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정치가로서 운경이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가장 선비다운 기품과 기개, 그리고 특유의 해학으로 일세를 풍미했었다면 수암 이재준 역시 명가의 후예다운 강직한 성품으로 말의 진수를 알고 촌철살인의 경구로 사업을 경영해온 기업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의 철저한 통제경제와 식민정책이 극으로 치닫고 있던 1939년. 당시 22세의 젊은 청년 이재준은 지금의 부평역 앞에 '부림상회'라는 간판을 내 걸었다. 오늘날 대림그룹의 시초다.


물론 이재준 회장에게는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했지만 풍부한 사회경험이 있었다. 일종의 경영수업으로 이미 18세 때부터 아버지의 정미소 일을 도와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림상회가 첫발을 내딛었던 부평의 당시 모습은 주위가 온통 전답뿐인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에서 이재준이 시작했던 첫 사업은 석회 및 철물, 건자재 등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부평의 모습 만큼이나 썰렁했다. 온전한 사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이재준 회장에게 거짓말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부림상회를 열었던 부평 땅이 단순한 황량한 벌판이 아니라 기회의 땅이 될 것임을 이재준 회장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한 큰 기회였다.


실제로 이재준 회장은 그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부림상회를 개업할 당시의 상황을 이재준 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부평이라는 데는 그때만 해도 아직 한적한 한촌(寒村)에 불과했으나 인천과 영등포공업 지대와는 서로 연결되는 중간에 위치에 있었고 각종 공장들이 한창 들어서고 있어서 이 지역이 곧 경인공업지구의 핵심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곳곳에서 농지를 박탈 당한 농민들과 유랑민들이 노동품을 팔 요량으로 부평으로 모여 들었고 그로 인해 부평은 때아닌 개발 붐을 맞게된 것이다. 그 즈음 이재준 회장은 서울 신촌에 사택을 직접 신축하고 부천에 일반주택 4동을 지어 파는 주택사업의 첫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순조로운 일은 아니었다. 건설업체의 난립과 미군정 종식으로 인한 미군공사의 중단, 그리고 전쟁까지 일어났다. 이재준 회장은 부산을 피난지로 택했다. 전쟁의 상처가 그렇듯 피난지 부산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지만 그곳에서 흩어졌던 40~50명의 대림 가족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일인 듯 그들은 그곳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때까지 해왔던 목재업 때문에 목재를 구입해 넣을 수 있었고 건설업을 시작했던지라 공사를 할 수 있어 집단 수용소를 짓는 공사부터 시작했다.


아울러 전쟁 후 복구공사가 시작되면서 건설업은 호황을 맞게 되고 이재준 회장의 대림 역시 이 기류에 편승한다. 특히 1960년대의 대림은 성장의 시대였다. 한국 최초로 태국, 베트남 등 해외 건설공사 진출, 경부 고속도로, 청계천 복개공사, 여수와 울산의 석유화학 및 비료공장 등의 영향으로 마침내 국내 건설업체 도급순위 1위까지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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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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