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구찌 <상> 홀스빗과 등자
세계명품 순위 3위 기록…브랜드가치 74억 달러
세계왕비 등 명사들 애용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일하며 귀족들과 상류층의 기호 및 문화를 배우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장인들의 숙련된 기술로 만든 제품들을 팔며 이내 유명세를 탔다.
젊은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린 그는 1937년 자신만의 창의력으로 핸드백, 가방, 장갑, 신발, 벨트 등을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당시 상류층 귀족스포츠였던 승마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이 제품은 홀스빗 장식과 등자(발안장) 장식 등이 상징적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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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품브랜들이 탄생한 이탈리아. 다양한 가죽제품을 비롯해 의류산업이 발달한 이곳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기록하고 있는 명품은 구찌다.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명품브랜드 순위에서 구찌는 프랑스의 루이뷔통, 에르메스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구찌그룹의 브랜드 가치는 금액으로 환산했을 때 74억7000만 달러에 달할 정도다.
◆'르네상스의 고장' 피렌체에서 태동 = 다른 명품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구찌 역시 이탈리아 작은 지역의 한 장인에게서 태동했다. 1921년 근대의 태동을 알렸던 르네상스의 고장 피렌체에서 창업자 구찌오 구찌는 가죽제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매장을 처음 선보인다.
이후 십수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을 통해 디자이너 구찌는 마침내 자신만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핸드백, 가방, 장갑, 신발, 벨트 등을 출시하며 제품라인을 확장한다. 1937년이었다. 이 때 제품에 사용한 홀스빗 장식과 등자 장식은 이후 구찌만의 브랜드 상징이 된다.
이탈리아가 파시스트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구찌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전쟁기간 동안 제품생산에 부족한 물자를 대체하기 위해 구찌는 자연소재인 대마, 린넨, 황마 등을 사용, 제품을 만들었다.
특히 이 당시 대나무로 제작한 뱀부백은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말안장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이 핸드백은 구찌만의 독특한 열처리 공정을 거쳐 제작된다. 그리스의 페데리카 왕비,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데보라 커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사용해 그 유명세를 더했다.
◆해외로 나선 구찌가(家)의 후예 = 1953년 창업주 구찌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들인 알도, 바스코, 우고, 로돌프가 회사의 주주로 참여했다. 같은 해 뉴욕에 매장을 내고 처음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구찌의 미국진출은 이탈리아 각 지역 브랜드 가운데 최초였다. 이후 런던, 팜비치, 파리, 베버리힐스 등 다양한 곳으로 매장을 늘려갔다.
전 세계 상류층을 중심으로 명성을 날리던 구찌는 1970년대 이후 피렌체 근처 까셀리나에 새 공장을 열면서 브랜드를 전체적으로 재편성했다. 미국을 비롯해 도쿄, 홍콩 등 아시아지역까지 진출하게 된 것.
구찌는 제품 하나가 그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간직될 정도였다.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로 오르내리는 재키 오(O) 핸드백은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를 기념해 만든 제품이었으며, 이후에 나온 클래식 모카신은 패션액세서리 디자인의 기념비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클래식 모카신은 196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이후 현재까지 같은 곳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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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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