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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황제] 우즈의 '화려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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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황제] 우즈의 '화려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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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차원이 다른 기량에 상대방을 압도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까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무기한 활동 중단' 선언은 지구촌 골프계의 '흥행'에는 적신호를 의미한다. 우즈는 사실 '21세기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전하는 대회 마다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며 골프계는 물론 전체 스포츠계의 '황제'로 추앙받을 수 있는 위상을 구축했다.


우즈는 사생활도 그동안 '완벽함' 그 자체였다. 적어도 아내 엘린 노르데그린과의 부부싸움 끝에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이후 수많은 내연녀들이 나타나는 등 문란한 사생활이 폭로되기 전까지는. 우즈의 '스캔들'은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골프황제'의 이미지를 집어삼켰고, 우즈는 결국 기약할 수조차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됐다.

우즈는 1975년 12월30일 아버지 얼 우즈와 태국계 어머니 쿨티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과 3살 때 9홀에서 48타의 스코어를 작성하는 등 골프에 대한 재능을 보여 어려서부터 각종 미디어에서 '골프신동'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우즈는 실제 1991년 미국주니어아마추어선수권에서 역대최연소우승(15세)을 수립한 뒤 1993년까지 대회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우즈의 기량은 프로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1996년 프로로 전향하면서 나이키와 4000만달러라는 엄청난 스폰서 계약으로 화제가 됐던 우즈는 라스베이거스인비테이셔널 등 곧바로 2승을 거두며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우즈는 이듬해인 1997년 4월에는 마스터스 우승 등 4승을 수확하며 프로 데뷔 42주 만에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진기록까지 더했다.


우즈는 스윙교정에 나섰던 1998년에는 단 1승에 그쳐 우려를 자아냈지만 1999년 무려 8승을 일궈내 '골프황제'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우즈는 특히 2000년 US오픈을 기점으로 브리티시오픈과 PGA챔피언십에 이어 2001년 마스터스 우승까지 메이저 4연승이라는 신기원을 열어 '타이거 슬램'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우즈는 이후에도 무릎부상으로 인한 몇 차례 수술과 재활,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 얼 우즈의 죽음 등 난관을 극복하면서 메이저 14승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71승을 쌓았다. 우즈가 1년에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걸어다니는 광고판'으로 각광을 받았던 것도 이때문이다.


우즈는 엘린과의 결혼 이후에도 2살짜리 딸 샘 알렉시스에 이어 지난 2월 아들 찰리 액셀까지 얻어 그 어느 것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런 우즈가 '불륜스캔들'과 함께 인생 최대의 기로에 섰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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