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얼마 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A씨가 "과거청산 대가로 지난 1965년 맺어진 한일청구권협정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A씨 주장은 당시 협정을 통해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 대부분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쓰여 실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이후 다시는 과거사 보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조항 때문에 일본 및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보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A씨의 심판 청구로 당시 협정은 44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협정 과정과 배경 등에 새삼 관심이 모이고 있다.
15일 A씨가 제출한 청구서 등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1951년 1차 회담을 시작으로 수차례에 걸쳐 강제징용 등 과거사 피해 보상 문제에 관해 일본과 회담을 벌였다.
이후 일본의 '과거사 망언'과 한국에서 발생한 4·19 혁명 등으로 회담은 연이어 결렬 또는 지연됐고 1960년 가까스로 재개된 회담은 이듬해 터진 5·16 사태로 또 다시 답보에 빠졌다.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과의 회담을 본격 재개했는데, 이번엔 보상액을 둘러싸고 양국간 입장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이 일본에 8억달러를 요구하자, 일본은 많아야 7000만달러밖에는 내어줄 수 없다며 버텼기 때문이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회담은 1962년 박 전 대통령이 김종필 특사를 일본에 보내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김 특사와 일본 대표 측의 비밀 회담에서 보상액에 관한 접점이 생긴 것.
이를 바탕으로 양국은 1965 6월 최종 협정을 만들어냈는데, 협정 주요 내용은 ▲일본이 한국에 무상으로 3억달러 제공하는 것 ▲경제협력 차원에서 2억달러를 연리 3.5%, 7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에 빌려주는 것 등이었다. 여기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 등 포괄적 보상금이 포함된 상태였다.
문제는 "양 체약국은 각국 국민의 재산·권리·이익과 이에 관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협정 제2조 제1항과 "본 협정일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도록 한다"는 같은 조 제3항 내용이다.
이 때문에 강제징용 피해자나 유족은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포항제철(현 포스코) 설립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대부분 소진했다.
이와 관련, A씨는 청구서에서 "문제의 조항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나 유족이 가해자인 일본 정부 또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본질적 기회를 침해하는 등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지난 2007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뒤늦게나마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태평양전쟁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에관한법률'을 제정했다.
A씨는 이 법률에 대해서도 "보상액을 1엔당 2000원으로 임의 산정한 뒤 한 번 보상금을 받으면 액수에 관해 어떠한 추가 이의제기도 하지 못하도록 해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마찬가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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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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