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는 '겉멋' 경계해야..금융위기, 시장의 정보비대칭성 개선에 제 역할
[아시아경제 정선영 기자] "큰 돈을 움직이다보면 외환딜러는 겉멋들기 십상이죠. 감내할 수준의 수익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농담처럼 툭 던지는 말 한마디지만 허투루 나오는 내용은 없다. 부화뇌동하지 않는 진중함. 빨리 끓었다가 빨리 식는 시장의 생리를 파악한 고참 딜러의 여유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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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대구은행 딜링룸 부부장. 딜링 경력 17년차.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도 예의를 잊는 법이 없는 그는 외환시장에서도 마당발로 통한다.
◆금융위기, 정보 비대칭성 개선에 한 몫
"녹록치 않은 장이었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이 개선된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죠"라며 이부부장은 지난 1년을 진단했다.
메이저 은행들이 한번 밀면 쉽게도 흔들리던 환율이었다. 거래 규모도 작고 역외에 노출된 우리 외환시장으로서는 금융위기가 외환거래 볼륨을 키우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시장 지배력이 있는 일부 은행이 외환시장을 흔들지 못할 만큼 외환시장 규모가 커졌어요"라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외환딜러들의 퍼포먼스도 우수했다"고 그는 말했다.
일부 은행들로 당국 개입에 대한 정보가 몰리는 등 지난해 은행들의 정보 비대칭성은 외환딜러들로서는 맥빠지는 일이었다. 한 은행이 개입 물량으로 밀고 들어올 경우 허둥지둥 하기 일쑤였던 것.
이 부부장은 "정부의 개입 형평성 고려로 쏠림 현상이 완화되면서 시장 정보에 의지한 외환딜러들이 제대로 딜링 실력을 겨룰 수 있게 된 점은 금융위기 이후 개선된 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환율이 외환시장 한 곳의 영향만 받지 않는다는 점도 달라진 양상으로 지적했다. 그는 "이제 환율은 외환시장의 움직임만 갖고는 볼 수 없어요"라며 "주식, 채권, 상품 시장 등이 연관성이 높아진 만큼 점점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라고 지적했다.
◆하루만에 환율 177원 추락..점심 공포증
지난해 아찔했던 순간도 있다. 그는 외환시장에서 지난해 7월9일 일명 '도시락 폭탄'으로 불리우는 당국의 점심시간 초강력 개입물량이 나왔던 때와 지난해 10월30일 한미통화스왑 발표일 하루만에 177원이 떨어졌던 날을 떠올렸다. 무서운 장세였다.
"환율이 위로 갈 것이라는 마켓 센티먼트가 있는 상태에서 롱을 잡고 있다가 당국의 매도 개입이 나왔다"며 "빠질 때마다 다시 오를 것으로 보고 더 롱을 더 잡았는데 환율이 30원 가까이 빠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딜러라면 지난해 누구나 시달렸을 '점심 공포증'이 시작됐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점심 시간에 당국이 개입 물량을 풀면서 환율이 요동친 이후로 그해 외환딜러 치고 마음놓고 점심을 먹어본 사람이 있었을까.
그는 "리먼 이후로 햄버거, 떡볶이 등 눈물의 도시락을 먹어야 했죠"라며 "특히 술마신 다음날은 정말 힘들었어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부부장은 "달러·엔 환율도 하루 변동성이 2~3%에 불과한데 원달러 환율에 대한 전례없는 당국 개입은 놀라웠다"며 혀를 내둘렀다.
통화스왑 발표일은 더했다. 뉴스가 발표되자마자 환율은 우수수 떨어졌다. 이부부장은 "그 때는 설마 얼마나 더떨어질까 싶어서 과거에 했던 식으로 떨어질수록 조금씩 더 사다가 무려 100원넘게 추락하는 걸 봐야했다"며 "일중 리밋 안넘게 스탑은 했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점을 절실히 느꼈죠"라고 덧붙였다.
다만 IMF 금융위기 때에 비하면 외환시장의 대응은 성숙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IMF때만해도 외환보유고가 200억~300억 수준인데다 처음 위기를 겪으니 그저 민족성에 호소하는 수 밖에 없었다"며 "10년이 지나면서 시장도 많이 성장했고 환율이 2000원선을 위협하면서 헤맸지만 외화유동성과 환율을 보는 자세는 훨씬 성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위기는 시중은행 딜링룸에 수익의 기쁨과 목표수익의 짐을 함께 안겼다. 한 차례 리먼 사태가 유발한 엄청난 변동성의 과실을 따 먹은 은행들이 딜링룸에 대해 점점 큰 기대를 하게 된 것.
"모든 은행들이 사상 초유의 실적을 내면서 딜링룸에 대해 다음해에는 1.2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게 됐다"며 "지난해는 시장 변동성이 특수했던 상황이었는데 목표에 대한 압력이 너무 높아진 부분도 있다"고 언급했다.
◆작지만 강한 파워딜링룸, 5년째 순증적 성장
작은 규모의 지방은행지만 외환시장에서 '작지만 강한 파워딜링룸'으로 꼽히는 대구은행 딜링룸.
외국계투자은행(IB),로컬은행, 외은지점, 역외세력, 수출입업체, 외환당국까지 수많은 참가자들의 치열한 전쟁이 날마다 이어지는 외환시장에서 지방은행의 네임으로 4~5년 연속 순증적으로 입지를 키워왔다.
"지방은행이라는 핸디캡은 있었지만 예전에 헤드로 계셨던 분이 MS고객 세일즈에 드라이브를 걸어줬다"며 "대기업, 자산운용사 등에 적극적으로 마케팅이 이뤄졌고 비용 투자도 뒷받침된 결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같은 성장에는 대구은행 딜러들의 겉멋에 연연하지 않는 넉넉한 성격도 한 몫했다.
깰 때는 엄격하기 그지 없지만 믿어줄 때는 확실히 믿어주는 이부부장. 그리고 진심으로 따라주는 후배딜러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덕일까. 대구은행 딜링룸은 냉정한 환율 전쟁이 펼쳐지는 공간임에도 따뜻한 정이 묻어난다.
◆첫딜, 사수의 말없는 가르침
대구은행 딜링룸에서만 17년. 그에게 대구은행 딜링룸의 문화는 이미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으리라. 이부부장에게 첫딜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당시에는 쉐도우딜링만 하면서 석달을 연습만 했다"며 "일종의 수습기간이 있었는데 당시 사수였던 과장님이 너무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윗사람이 저정도밖에 못하나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고 그는 초보딜러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생각은 첫딜과 함께 가뿐이 깨졌다고 한다.
처음에 50만불로 달러·마르크, 달러·엔으로 첫딜을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변동성이 엄청났던 날이었다고. 이부부장은 "건당 손실한도가 5000불이었는데 600만원 터졌다"며 "그런데 사수는 말이 없더라"고 웃음지었다.
그는 "변동성이 큰 날 왜 하필 사수가 개시딜을 시켰는지 나중에야 알았다"며 "구멍가게에서 배웠지만 첫딜에서 건방지지 않도록 제대로 배운셈"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부부장은 딜러로서 겉멋을 버려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않고 있다.
이같은 소신 덕분에 그는 딜링룸 내에서의 포지션에 대한 밸런싱에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딜링룸 내에서 여러 딜러가 한 방향으로만 풀베팅했을 경우 시장이 반대로 갈 때를 대비해서 반대포지션을 잡아주는 '보험딜'을 해준다"며 "포지션 쏠림을 막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닥이딜 자제하라..아차하면 사고
또닥이딜.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딜러들이 택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샀다 팔았다만 반복하면서 거래량을 늘리는 기법.
이부부장은 또닥이딜을 자제하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외형적으로는 성장할 수 있지만 어차피 고객 물량이 없는 상태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샀다 팔았다 하는 것이 물량을 늘릴 수 있다"며 "그러나 이런 습관이 큰 장이 섰을 때는 한방에 갈수 있는 위험한 습관"이라고 꼬집었다.
주니어 딜러들이 갖기 쉬운 거래량에 대한 욕심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이어진다.
그는 "큰 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며 "물량이 많은 딜러에 대한 이상한 존경심은 버려야 해요"라고 그는 강조한다. 브로커에게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거래량 늘리기에만 급급한 식의 마켓 메이킹이 실제 이익과 반드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단호한 지적이 이어진다.
그는 "딜링룸은 아차하면 사고나는 파트이기에 엄한 상사가 필요하죠"라며 "손절 잘하고 빨리 잊는게 습관화 돼야 하는데 고집을 부리면서 시장과 반대로 가는 포지션을 잡고 있거나 심리적으로 겉멋이 드는 것은 자제해야 해요"라고 힘줘 말했다.
◆5년 넘으면 관리성 딜러로 바뀌어야
그러나 엄한 상사로서 딜링룸을 이끌어가면서도 17년 딜링생활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딜러로서 또는 관리자로서 그만큼 고민도 많다.
"딜러로서 5년 이상 되면 갈수록 여우가 돼야 합니다"라며 "점점 걱정과 의심이 많아지고 과감한 베팅을 자제하게 되죠"라고 그는 말한다. 젊을 때는 판단력, 과감성이 중요하지만 차츰 관리성 딜러로 바뀌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외환딜러도 은행원이다. 딜링룸이라는 특화된 부서에서 전문화된 업무를 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심적 부담도 적지 않다.
"시중은행은 15년~20년 트레이더로만 승부를 보기는 힘들죠"라며 "딜링 파트는 입행 동기에 비해 출세할 수도 있지만 영업점에서 주요부서를 섭렵하는 동기들에 비해 오히려 좁은 외환시장에서 반복된 딜링만 할 경우 뒤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딜링에 대한 그의 원칙은 분명하다. 이부부장은 "딜러들과 게임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들은 오링당할 때 증자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원칙을 정해놓고 자기절제를 한다"며 "이같은 차이만 봐도 딜러의 스타일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딜러들끼리 거래하다보면 감정싸움으로 갈 때도 있어요. 그러나 물량 플로라면 섣불리 덤비다가 깨질 수도 있죠"라며 "언젠가는 컨디션, 느낌, 시장에 대한 자신감이란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날이 온다"며 "감정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 젊은 딜러들은 다들 영어도 잘하고 시장에 대한 기본 지식도 있는데다 서로 메신저로 교류하면서 발빠르게 정보를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외환시장에서도 표시 안나게 점점 세대 교체 과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며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지면서 점점 젊은 딜러들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고 말했다.
최신댄스가요를 좋아하고 당구도 잘치는 이부부장. 그가 운영하는 외환딜러 블로그(http://kr.blog.yahoo.com/starrainlee)에는 대학생 때 친구들이 지어줬다는 '산소년'이라는 별명이 그대로 남아있다. 즐겁되 무게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베테랑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성우 대구은행 부부장은 지난 1990년 대구은행으로 입행한 후 1993년부터 딜링룸 근무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17년째 스팟, 이종통화, 스왑 등을 맡고 있으며 대구은행 메인딜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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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 기자 sigum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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