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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이병헌에게는 이제 '한류스타'라는 수식어보다 '할리우드 스타'라는 닉네임이 더 어울린다.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이하 '지아이조')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병헌은 현란한 액션 연기와 능숙한 영어 연기를 선보이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으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이병헌은 할리우드로부터 받은 러브콜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아이조'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데다 만화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한 탓이었다.
결국 김지운 감독과 박찬욱 감독에게 조언을 구한 그는 출연을 결정하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나는 비와 함께 간다(I Come with the Rain)' '지아이조'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들과 비슷한 작품이 바로 '지아이조'였으니 기분 좋게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낯선 환경에서 촬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대사가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모국어가 아닌 영어라는 부담이 돼서 그는 "대사 때문에 NG를 내는 건 프로답지 않다는 생각에 대사를 미리 완벽하게 외웠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던 패턴을 버리고 만화적인 연기를 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병헌은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흡족하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 카페에서 이병헌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특별히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다는 게 의외일 정도로 발음이 좋았다.
▲ 말한 것처럼 18세 2년간 한 게 전부다. 그래서 어려운 얘기하면 못 알아 듣는다.운좋게 발음이 좋고 특이한 동양인의 액센트가 아닌 것일 뿐이다. 발음 같은 건 약간 운 좋게 선천적인 것 같다. 어학에 관심이 많아서 불문과를 선택한 이유도 있을것이다. 한국사람인 미국 매니저가 있는데 촬영 때 나와 함께 생활하지만 영어를 쓰며 살진 않았다. 분명 도움이 되긴 했다.
- 스톰 섀도우의 눈빛이 강조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 감독님의 애정도 있겠지만 그건 '지아이조' 팬들의 애정이 심하다. 스톰 섀도우와 스네이크 아이즈 두 사람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애정이 크다. 미국 관객들은 동양적인 신비로운 무술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다. 아, 촬영 중에 내가 감독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도 있다. 스톰 섀도우의 모습에서 회상 장면으로 넘어간 다음에 다시 스네이크 아이즈에게 돌아오는 건데 그걸 듀크와 배로니즈에게 적용해서 썼더라.
- 액션 연기는 한국과 어떤 게 다르던가.
▲ 액션 연기는 다른 게 없다. 다른 건 거의 못 느꼈다. 스턴트 팀 보면 의외로 동양인이 많다. 굳이 차이를 느낀다면 우리나라는 태권도가 많이 가미된 액션을 한다. 할리우드 스턴트팀 연기는 쿵푸가 많이 가미돼 있다. 배우들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기에 나는 태권도를 사용하고 왼발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쿵푸는 화려한 반면 파워풀한 게 덜한 것 같아서 난 화려하지 않은 대신 파워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스네이크 아이즈와 차별화를 했다.
- 할리우드 진출 위해 노력한 부분은 무엇인가?
▲ 솔직히 부끄러운데, 특별히 노력하고 준비한 부분이 없다. 후배들이 연기를 위해서 해야할 일이 뭘까요 하고 물으면 준비할 거 없다고 말한다. 할리우드로 갈 거면 영어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건 깨달았지만 한국에서 할 거면 준비할 게 없다고 말한다. 많이 돌아 다니고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라고 충고한다. 네 감정이 느껴지는대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싸움도 많이 해보고 아주 진한 사랑도 해보고 하룻밤 사랑도 해보라고 말이다.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는걸 대신해서 보여주는 게 우리 직업 아닌가. 특별한 공부가 뭐 있겠나. 연기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패가 있는 거다.
- '지아이조'에 출연한 배우들이나 감독, 제작자가 '달콤한 인생' 칭찬을 많이 하더라.
▲ 내 연기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작품을 연출한 감독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우연히 좋은 연출자를 만나 좋은 작품에 출연했을 뿐이다. 그 영화가 내게 준 영향은 매우 크다. 그 영화 때문에 미국 에이전시 CAA와 인연이 닿았던 건 아니지만 그 영화로 인해 계약이 결정되긴 했다. 뜻밖에 할리우드에 그 영화의 팬들이 굉장히 많더라. LA에서 돌아다니며 미팅할 때는 브래드 피트가 있는 회사도 갔는데 피트 매니저가자기도 그렇고 브래드 피트 역시 '달콤한 인생'과 내 팬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번은 '둠'이라는 영화로 할리우드 프리미어 행사에 처음 갔던 적이 있는데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내게 다가와 팬이라며 악수를 청하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 비현실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의외로 할리우드 업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지아이조'라는 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 일단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건 꿈처럼 생각햇던 일이잖나. 이젠 이러저러한 길을 통해 몇몇 배우들이 시도하고 있고 이젠 그런 게 큰 뉴스가 되지도 않은 세상이 되버렸다. 나는 이 영화로 한 계단 오른 느낌이다. 스티븐 소머즈 감독과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 프로듀서의 조합은 어떤 누구도 놓치기 싫어하는 카드라고 시에나 밀러도 말한 적이 있다. 필모그래피에 이런 영화 한 편 있는 게 종합적으로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고 선택했다더라. 나도 비슷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름을 알리기엔 최상의 카드였다. 두번째, 세번째 스텝을 지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시나리오를 고르고 내가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후배들도 와서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 감독님들도 와서 기를 펴고 큰소리칠 수 있는 단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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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에서 더 연기한더면 어떤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나?
▲ 사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건 저예산 영화라도 어둡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카메론 크로우의 '제리 맥과이어'나 '바닐라 스카이' 같은 작품들도 좋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던데.
▲ 일본 프로모션 때 오랜만에 스태프들을 만나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스티븐 소머즈 감독이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주더라. 편집 끝내자 마자 스필버극와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보여줬더니 스필버그가 저 동양 배우 누구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오디션을 많이 봐도 참 찾기 힘들던데 어떻게 해서 저런 배우를 캐스팅했냐고 물었단다. 자기도 신기하다는 듯이 자랑하고 싶은 거였다. 속으로는 '스필버그와 빨리 연결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웃음)
- 강제규 감독의 차기작에 제의를 받았다던데.
▲역할이 있긴 있나 보더라. 내게 맡는 좋은 역할이 있다고는 했는데 지금 많이 연기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듣기론 강제규 감독이 그 영화 전에 한일합작를 찍는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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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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