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박소연 기자]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남자 손한번 안 잡아본 가장 순진했던 친구가 선본지 한달만에 결혼을 하겠단다. 게다가 제일 먼저 결혼한 사람에게 모아 주기로 하고 10년 동안 같이 부은 적금 3825만원을 정말 혼자 다 먹겠단다. 오 세상에 독한년.
뮤지컬 '웨딩펀드'는 고등학교 동창인 3명의 친구가 제일 먼저 결혼하는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하고 10년동안 부은 적금 3825만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을 그린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셋 중 하나가 선 본 지 한 달만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포하자, 다른 친구들도 앞다퉈 결혼계획을 세운다.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한 지희(김민주)는 졸지에 "적금을 혼자 다 쳐먹고도 남을 독한 년"이 된다. 세연(유나영)과 정은(박혜나)는 "고등학교 때도 여름에 혼자 찬물에 발담그고 공부한 년"부터 "적금깨서 보톡스(♬) 보톡스(♬) 맞자고 노래를 불렀는데도 안된다고 하더니 결국 혼자 먹는 독한년"까지 버라이어티한 욕을 내뿜으며 지희를 앞지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뮤지컬 '드림걸즈'의 오디뮤지컬컴퍼니가 야심차게 내놓은 창작뮤지컬 '웨딩펀드'는 기대 이상이다. 그동안 라이선스 뮤지컬 제작으로 쌓은 노하우가 헛되지 않았던 셈.
음악, 무대, 배우가 관객들의 웃음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콕' 찔러 터뜨린다. 관객들의 몸속에서 엔돌핀, 아드레날린, 도파민 등 온갖 호르몬이 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최근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이렇게 배 아플때까지 웃는 공연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
최근 결혼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여러가지 얘기를 하다가도 결국에는 결혼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람은 있는데 돈이 없거나, 집도(!) 있는데 사람이 없거나, 사람도 돈도 없는 경우 등 여러가지 이유로 결혼을 하고 싶으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극 중 29살 주인공들도 여러가지 이유로 3825만원 짜리 결혼티켓을 거머쥐기가 어렵다. 정은은 10년동안 뒷바라지 한 남자친구가 바람이 나고, 세연은 그 동안 알아왔던 남자들은 하나씩 만나보지만, 이미 지나간 인연들이다. 선보러 나간 자리에서도 '어디서 이런 변태들만 모아왔나' 싶을 정도인 남자들만 나온다.
그 중 최고봉은 처음으로 결혼을 선언했던 지희가 예비신랑과의 첫 여행에서 '홀딱벗고 고무줄' 놀이를 한 뒤(고무줄 놀이의 끝인 만세까지 다 부르고), '그 남자 변태'라며 파혼을 선언한 것.
이 작품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미혼여성들이 보기엔 딱이다. 섬세한 여성심리가 작품 곳곳에 현실감있게 잘 표현돼 있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사실적인 대사가 100% 공감을 이끌어 내기 때문.
여자든 남자든 결혼을 하기전에 이토록 가혹하게 상대방을 평가하고, 작은 허물에도 쉽게 마음이 멀어지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일 것이다. '웨딩펀드'는 바로 이런 결혼에 대한 조급함과 두려움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특히 세연의 친구이자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 남자친구 성호 역의 전병욱은 멀티맨(혼자서 여러 단역을 소화해내는 배우)으로서의 역할을 200% 소화해 낸다. 치고 빠질 때를 정확하게 아는 리듬감있는 연기와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능글맞음이 일품. 그가 등장할 때마가 객석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이 들린다. 마음껏 웃고싶다면 오랜친구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 보시길. 8월16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1관.(1588-5212)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