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빗줄기가 너무 굵어져서 큰일이다. 앵무새는 잘 있을까. 밥은 먹고 다니는지..'
장마철→앵무새.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상관이 있다. 상관이 있는 관계가 돼 버렸다.
몇주전 집근처 성곽에 아기앵무새와 산책을 나갔다.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서 "앵무새에요? 신기하다"를 연발하던 참이었다. 아기 앵무새 한마리가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윙컷을 해 뒀음에도 바람을 타더니 나무 위에 올라앉았다. 앵무새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다 밤이 깊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앵무새들은 잠시만 방심해도 '미아조'가 될 수 있다. 태어나서 밖에 나온 적이 별로 없는 앵무새라면 더더욱 그렇다. 날아다니는 동물이니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 119도 요즘 너무 바빠서 동물 구조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시끌벅적한 도시 한복판에 나간 앵무새가 집을 찾아오는 것도 기적같은 일인 셈.
텅 빈 새장과 먹다남은 모이. 한숨밖에 안나올 이런 상황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날개를 잘라주세요~
잔인하다고? 날짐승의 날개를 자르다니 무자비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에서 주로 생활하는 애조의 안전을 위해 윙컷은 필수다. 가스렌지나 문 등 위험한 곳으로 날아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살을 잘라내는 것은 아니니 너무 잔인하게 볼 일은 아니다. 날개의 속깃털을 가지런하게 잘라서 정리해주는 것이다. 다만 새의 깃털은 살쪽으로 갈수록 혈액이 흐르고 있으니 너무 짧게 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잊지 않고 윙컷을 해줘야 앵무새도 큰 위험 없이 자랄 수 있다.
대부분의 미아조들은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발생한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두거나 현관문을 여는 사이에 날아가는 등의 가출형 미아조들이 있는가 하면 윙컷을 한 채 어깨위에 올리고 나갔다가 갑자기 놀라서 날아오르기도 한다. 우리집 앵무새가 도심을 헤매다가 결국 굶어죽는 최후를 맞이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만큼 정성들여 보호해야 한다.
어떤 방법도 주인의 관심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인식링을 채우는 것도 방법이다. 어릴 때 발목에 주소나 전화번호 등을 새겨넣은 인식링을 채우는 것이 좋다. 대개 혈통 보존을 위해 채우는 경우가 많지만 인식링을 채워둘 경우 그만큼 새를 구조한 사람이 돌려주기도 용이하다.
◆미아조,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해
주인을 잃은 미아조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먹이를 제때 구하지 못해 굶어죽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고양이 등의 천적에 노출되는 것도 문제다. 여러모로 사람의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앵무새로서는 불리한 생존환경인 셈이다.
그러나 주인이 관심을 버리지 않고 찾아다닐 경우 간혹 돌아오기도 한다. 안씨의 경우가 바로 그런 사례다.
반려조이름:안동팔
반려조특징:생후3개월정도 됐고 날개를 3장 컷트 했습니다.
회색앵무(몸색깔은 비둘기같고 꼬리는 빨간색입니다...몸집도 비둘기 만큼 됩니다.)
실종위치:고속도로 부산방향 단양휴게소
회색앵무를 잃어버렸던 안 모씨의 사연이다. 안씨가 동팔이를 찾게 된 계기는 바로 망원경이다. 안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망원경으로 건너편 산까지 찾아본 끝에 20시간만에 겨우 찾았어요"라고 말했다.
다음은 안씨가 사랑스런 애완조 까페에 올린 사연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게소 맞은편 뒷편 먼산쪽을 군용 만원경으로 한번씩만 더 찾아보고 갈려고 마음을 먹고 둘러보는데 한참을 보다가 망원경 렌즈에 소나무꼭대기에 빨간색이 보이길래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리도 애타게 찾던 동팔이였습니다..그순간 뛰기 시작했는데 산을 내려와서 맞은편 산까지 올라가는데 정말 1분도 안걸렸던것 같습니다.
나무밑에 도착해서 동팔이를 부르니까 대답을 했습니다. 하늘높이 날아 오른 동팔이를 힘차게 부르니까 드디어 동팔이가 제 몸으로 날아왔습니다. 정말 감동이었고 꿈만 같았습니다.]
혹시 주변에 동네방네 새소리를 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미친사람 보듯 하지 마시라. 그 사람, 진짜로 애가 타고 있다.
정선영 기자 sigum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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