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부사관학교 유격훈련 체험기
“충성! 정통해야 따른다.”
지난 24일 찾아간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소장 박종선.육사 34기). 세계최대 규모의 부사관 양성기관이란 타이틀에 걸맞은 78만여평의 교장안에는 각 기수별 부사관 후보생들이 구령에 맞춘 기초체력훈련에 한창이었고 한쪽에서는 따사로운 햇살 아래 면회를 온 가족들과 함께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줄타기 훈련은 밧줄길이가 약 40m가량이며 높이는 20m가량이며 2중으로 안전장치를 해놓았다.
일반병에서 부사관을 지원한 후보생들이 모여있는 09-2기 15중대 4소대에 배치된 기자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일요일 오후 4km 구보에 동참했다. 구보를 마치자마자 순환식 체력단련장으로 옮긴 후보생들은 외줄타기, 윗몸일으키기 등 기초체력훈련에서 서로가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건네며 힘이 되어 주었다. 이들 후보생들은 웃으며 기초체력훈련에 임했지만 체력검정에서 낙오를 할 경우 훈육심의를 걸쳐 퇴교대상자에 오를 수 있어 외줄타기를 오르지 못한 후보생들은 반복훈련을 자진해서 하기도 했다.
부사관은 부대원들의 모범적인 모습을 이끌줄 알아야하며 병사들의 따뜻한 어머니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교육대로 돌아오는 길에 들러본 여군 막사에서는 간담회가 한창이었다. 짧은 스커트 머리의 여후보생 말투에는 남후보생 못지않은 군기가 담겨있었다.
우석대학 소방안전학과를 휴학한 박지혜 후보생(09-3기)은 “경쟁률이 치열한 소방공무원의 길을 포기하고 군인의 길을 선택한 만큼 훈련 하나하나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10주 만의 첫 면회를 일주일 앞두고 가족이야기를 꺼낼때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아직 순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저녁식사를 위한 식당이동 중에도 제식훈련과 목청이 터질듯한 구호는 계속됐다. 소부대를 이끌기 위한 부사관 후보생이기 때문에 제식이 생활습관이 되어야한다는게 학생지도관의 귀띔이다. 식당안에서 남녀 후보생들이 같이 식사를 했지만 서로가 이성의 눈길이 아닌 동기애로 가득차 있었다. 일부 교육대의 경우 같은 생활관을 사용하지만 훈련외에는 서로 마주칠 일은 없다.
학생지도부사관 하선애 중사는 “남녀 후보생들이 같이 훈련을 받으면 동기애는 물론 여군에 대한 편견도 많이 준다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병보다 우위적인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항상 기초체력을 다지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종교활동을 위해 후보생들이 생활관 안에 삼삼오오 모였다. 교장안에는 불교, 기독교 등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으며 후보생들은 부사관에 임관해 야전에 배치되었을 경우 부대원들의 종교 이해와 권유를 위해 타종교활동도 자처해서 참여했다.
생활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후보생들이 다음날 있을 유격훈련 장비 점검과 점호준비가 한창이었다. 분대장후보생은 분대원들에게 존댓말로 지시를 내리고 분대원들도 지시사항에 복명복창으로 따르고 있었다. 후보생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몸에 익히고 분대원 입장에서 분대장을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맡았다.
유격훈련 전날 점호시간에 교육관이 군장을 세심히 체크하고 있다.
분대원들의 재빠른 움직임속에 다가온 점호시간. 일직사령의 순찰과 다음날 있을 장비점검이 이어졌다. 완전군장을 풀어헤치고 무작위 검문이라도 하듯 꼼꼼히 살피는 중대장의 움직임에 훈련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다행히 일반병에서 지원한 훈련생인지라 특별한 실수가 없어 이날 밤은 무사히 넘기고 잠자리를 청했다.
육군에서 악명높은 3대 유격장인 화산유격장(3사관학교), 동복유격장(상무대), 고산유격장(부사관학교). 이른 아침부터 유격장 도착때까지 후보생들의 마음이 경직이라도 된듯 아무말이 없었다.
40분 거리의 유격장에 도착하자 한쪽에 빨간 육각모자를 쓴 조교들이 쳐다보는 눈빛이 차갑기만 했다. 군장을 풀고 곧장 연병장에 집합. 후보생들은 일반병 시절부터 받아온 유격이지만 받을 때마다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아저수지를 끼고 있는 유격장의 풍경을 즐길 사이도 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한 조교의 카리스마 넘치는 호통이 이어졌다.
육군에서 악명높은 3대유격장중 하나인 고산유격장
유격체조는 총 14개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같이 온몸 구석구석 근육을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레펠, 세줄타기, 수평이동 등 산악훈련의 안전을 위해 실시한다는 조교의 말은 잠시 잊은 채 ‘얼마나 구를까’라는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동작 1번 온몸 비틀기부터 이어지는 체조는 순서마다 헤쳐모여, 팔굽혀펴기 등을 포함해 강행군을 이어갔다. 마지막구호는 말하지 않는다는 호령이 무색하게 어디선가 큰 목소리의 마지막 구호가 들려와 힘든 체조는 두세 차례 반복되기 일쑤였다. 드러누운 연병장의 땅바닥 온도는 온돌방을 무색하게 했고 간혹 불어오는 산바람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동작 8번 쪼그려 앉아뛰기부터는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옷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나 하나 때문에 타 훈련생에게 피해를 주면서 어떻게 부대원들을 이끌 부사관이 되겠느냐”는 조교의 목소리에 다들 입술을 물고 버티고 있었다. 반복되는 헤쳐모여는 25도 기온에도 현기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기자가 훈련생인줄 착각한 조교는 살며시 다가와 “발가락 모으고 똑바로 안섭니까? 놀러오셨습니까” 부동자세를 취하라고 재촉했다. 순간 긴장했고 타훈련병에게 피해를 줄까 목청을 더 높일 수밖에 없었다.
유격대 박두재 대장(소령 학군35기)은 “산악훈련을 위해 온몸의 긴장을 풀 수 있는 체조는 필수적이며 긴급상황에 대비한 지역병원, 심폐소생술 등 숙련된 조교가 있어 언제든지 안전대비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유격체조는 총 14개의 동작으로 구성되어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오자 다들 해냈다는 흐뭇함과 허기진 배보다 시원한 물 한잔을 더 애타게 찾았다. 서로가 여전히 존댓말을 쓰며 자신의 수통 물을 동기 머리에 끼얹어주는 모습에 ‘부사관은 병사들의 따뜻한 어머니여야 한다’는 교육관의 말을 되새기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달콤한 휴식도 잠시 산악훈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1시간 가량 코스별 훈련장을 지나 산 정상 세줄타기 훈련장까지 올라갔다.
산 정상과 정상을 연결한 세줄타기 밧줄길이는 40m가량. 20m높이에 있는 밧줄은 그물과 생명줄 2중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내려다보는 발아래 광경은 아찔하기만 했다. 고소공포증을 뒤로하고 3번째 순서로 정해져 밧줄에 다가가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어김없이 쩌렁쩌렁 울리는 조교의 목소리는 귓가를 울리고 꾸물거린다는 이유로 다시 얼차례를 받고 말았다. 과도한 긴장은 금물이지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하며 훈련에 임하라는 뜻이었다. 전방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군화 밑창 홈을 이용해 한발 한발 전진하자 이번엔 건너편 조교의 호통이 이어진다. 배운대로 훈련에 임하지 않을 경우 자칫 사고를 유발하기 때문에 집중하라는 경고였다. 건너편 정상에 도착하자 곧장 다리에 힘이 풀리고 아래 땅을 보자 안도의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유격후 먹는 식사시간. 온몸이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비싼음식보다 값지게 먹었다.
다음과정은 수평이동. 도르래를 이용해 몸을 ‘L’자로 굽히고 건너편 정상까지 넘어가는 훈련이다. 몸을 굽히지 않을 경우 착지할 때 충돌위험이 있어 오전훈련으로 경련이 일어날 것 같은 배에 힘을 주고 밧줄에 몸을 실었다. 산바람을 가르며 3초만에 안전착지.
코스별 산악훈련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의 저녁노을은 하루종일 햇볕 아래서 그을린 훈련생들의 얼굴빛깔 같았다.
이들은 내일도 ‘나보다 더 이상의 전문가는 없다’라는 의지로 소부대 전투현장의 전문 부사관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점심식사후 휴식시간. 후보생들은 자신의 수통을 비워 기자에게 시원한 물세례를 하고 있다.
부사관은 미래다
한국전쟁 1년 전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육탄으로 적의 기관총 진지를 격파한 육탄 10용사, 한국 전쟁시 베티고지 전투에서 1개 소대병력으로 18시간 동안 적 2개 대대 314명을 사살하고 고지를 사수한 김만술 상사 등 전쟁사에서 부사관의 역할은 전쟁승리의 핵심을 차지해왔다. 또 19세기 초 나폴레옹은 자신의 부사관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만든 것을 보면 군조직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는 부사관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어진다.
미군의 영향을 받아 창군때부터 도입한 육군 부사관은 기술위주 첨단 과학군으로 가는 구조에서 대폭 증가하는 추세이며 군복무기간 단축, 병사지원 축소 등에 따라 병 의존도가 낮아져 전문성을 가진 간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부사관은 교육을 통해 병 우위의 체력, 육성지휘 능력과 기본전투기술, 직책에 부합하는 부대관리 능력을 배양해 배출한다.
국방부에서도 부사관의 중요성을 인식해 2020년에는 육군 정원의 30%까지 확대할 예정이며 부사관의 위상과 기능을 고려해 지난 2005년 육군부사관학교장의 계급을 준장에서 소장으로 한 단계 올렸다.
육군부사관은 직업적인 면으로 봤을때도 장점을 가지고 있어 장교출신 부사관은 물론 일반대학 부사관학과 졸업자들의 지원이 크게 늘고있다. 부사관은 일반공무원과 비교 했을때 국방의무와 취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고 임관연령이 공무원의 27세에 비해 7세 빠른 20세여서 시간절약은 물론 의식주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장점과 초임연봉 1866만원의 혜택이 주어져 공무원에 비해 저축률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는 매력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학에서도 부사관학과 개설 움직임이 활발하며 이는 군에선 예산투자 없이 준비된 후보생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 안보의식 강화, 부사관이 경쟁력 있는 직종이라는 국민인식을 끌어내는 효과를 볼 수 있어 반기는 추세다. 물론 일반대학 부사관학과 출신 지원자들도 일반지원자와 같이 동일한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2년동안 준비한 만큼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한다.
육군 부사관에 대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사관출신으로 장교가 된 단기사관의 진급문제, 야전에서의 부사관 운용방침, 학력에 따른 인식전환 등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부사관 진급문제의 경우 학벌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선진국의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일찍부터 간부후보생(OSC)제도를 통해 병과 부사관도 장교로 임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웨스트포인트(육사)와 버지니아 군사학교, 학군(ROTC), 간부후보생 등 출신을 따지지 않고 능력에 따라 상위계급으로 진급시킨다.
미국 조지 마셜장군은 2년제인 버지니아 군사학교를 나와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 국무장관을 역임했고 할렘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흑인 콜린파월은 학군장교 출신으로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에 올랐다. 또 초대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존 벤시는 사병에서 출발, 간부후보생을 거쳐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지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사진제공=KODEF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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