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해온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비정규직법) 개정에 제동이 걸렸다.
노동부는 야당과 노동계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1일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제한을 현행 2년으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정부안(案)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확산되면서 자칫 법안 자체가 '표류'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비록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은 "아직 비정규직법에 대해 구체적인 당론이 정해진 건 아니다"고 하나, "정부안을 그대로 수용키는 어렵다"는 게 상당수 의원들의 반응이어서 비정규직법이 정부 원안대로 국회 문턱을 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 13일 열린 한나라당 정책의총에서도 "현행 비정규직법의 적용 시기를 유예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김정권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홍준표 원내대표 역시 "(비정규직법 개정은) 사용기간 연장 뿐 아니라,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대책이 함께 따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현행 법의 시행 유예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출신의 김성태 의원도 14일 MBC라디오에 출연, "정부안대로 한다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할 기업들이 얼마나 있겠나. 고용의 질이 나빠진다는 데 많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노동부의 법 개정은 경제위기라는 변수 하에서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의원은 '유예기간을 4년으로 하자'는 홍 원내대표 등의 의견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4년은 길다고 본다"며 '2년 유예'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2년이냐 4년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현재로선 정부안에 따라 법 개정을 강행키보다는 경기와 노동시장 상황 등에 따라 일정 기간 법 시행을 미루고, 대신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독려키 위한 추가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들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비정규직법의 4월 국회 처리 의지를 거듭 밝혀왔던 노동부만 입장이 난처해졌다.
당초 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 연장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의원입법으로 발의될 예정이었으나, 한나라당의 태도가 시원치 않자 노동부가 정부입법으로 다시금 총대를 멘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우린 욕만 잔뜩 먹고 본전도 못 찾는 결과가 올 수 있다"고 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일각에선 "법 시행이 일시적으로 유예되더라도 결국엔 정부안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기대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엔 오히려 노동계로부터 '눈 가리고 아웅한다'는 식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한다는 건 그 사이에 다시 사용기간 연장 등을 검토하겠다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비정규직법은 만들 때부터 실효성이 없었다. 차제에 법안 자체를 폐기하고 다른 노동 관계법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양혁진 기자 yhj@asiae.co.kr
장용석 기자 ys417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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