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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슘페터의 임종

시계아이콘02분 45초 소요

[권대우의 경제레터] 슘페터의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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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저녁의 일입니다. 오랜만에 일찍 귀가 했습니다. 하루가 궁금했습니다. TV를 켰습니다. 휴가 나온 아들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빠, 볼 것 없어, 다 똑 같은 소리야.”

“그래도 뉴스시간인데....” 애써 시작되는 뉴스에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아들 말이 맞았습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영웅들의 얘기가 대부분이었고, 박연차 리스트, 탤런트 장자연 관련 소식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야구얘기는 그래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불황의 터널에서 그나마 희망을 심어줬고, 성공경영의 지혜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연차, 장자연관련 소식이 이어지면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연차 & 장자연 뉴스가 흘러나오는 동안 아들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아들이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저 사람들 알아요? 혹시 만난 적이 있나요?”


아빠가 신문사 회장이니 그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대답하지 않은 채 아들을 쳐다봤습니다.


안다고 하면 아빠도 저런 사람들과 한통속이겠거니 할 것이고, 모른다고 하면 우리 아빠 역량이 그것밖에 안되겠구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그렇지요. 아빠가 잘 아는 사람이면 걱정스러운 일이고, 모른다면 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죠. 뭐...”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잘 알아도 자존심이 상하고, 모르면 체통이 깎일 수도 있는 뉴스- 오늘을 사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유추해 봅니다. 이런 뉴스의 홍수 속에서 이나라에서 사는 어린이들이, 젊은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해갈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25일 출근했습니다. 신문들 역시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기 싫은 지면은 그냥 넘기면 되는 것이 신문입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한참 넘기는 도중 마음에 와 닿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름답게, 그리고 보람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사랑과 배려가 우리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배려, 듣기만해도 감명을 주는 그들의 얘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안성열(60세, 안성열 성형외과 피부과 의원)씨
그는 1970년대 경북대 의대 피부과 레지던트 시절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한센병 환 자들을 돌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질병의 치료보다는 병 후유증으 로인해 뒤틀리고 뭉그러진 얼굴과 손발의 성형수술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고 그 이후 20년 동안 한센인 진료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것도 무료로 치료하는 선행을 해온 것입니다.


■ 충남 논산의 김화순(53세)씨
5년 전 시누이가 신장 이식을 받자 이 은혜를 갚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50대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떼줘 스스로에게 약속을 지켰습니다. 며칠 후에는 가족 4명 모두가 아무런 조건없이 장기기증 서약을 했습니다. 일가족 4명이 받은 사랑의 4 배를 갚은 셈입니다.

■ 말리 홀트(74세, 홀트 아동복지회 이사장)
그는 1956년 “아픈 아이가 많으니 와서 도와달라”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땅을 찾았습니다.

그때 그에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버림 받은 아이들의 울음소리였다고 합니다. 그래 서 그는 홀트아동복지회를 만들었고 입양되었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 그들의 얼굴에서 가족의 사랑이 묻어나는 걸 보면서 평생의 보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 도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압둘 사타르 에디(81세, 에디재단 대표)
그는 방 하나와 옷 한 벌을 제외하면 재산이 전혀없는 청빈함과 재난이 있는 곳에 정 부 기관보다 먼저 도착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테레사로 불 리기도 합니다. 특정 고액 기부자에 의존하면 사회봉사 자체가 무력해지고 영리추구 단체로 변질될 수 있다는 판단에 가난한 사람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스코에서 주는 청암상 봉사부문을 수상한 뒤 한 그의 말이 더욱 진한 감동을 줍니 다.


“가난을 없애려면 가난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게 해야 합니다. 부자의 기부에 의존했다 면 지금처럼 60년 동안 한결같이 사람들을 돕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81세가 된 이 노인의 마지막 남은 꿈 역시 사람들이 아플 때 병원에 갈수 있고 지독한 가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도록 하는 게 그의 마지막 꿈이라고 합니다.


깊은 밤, 서재에서 제 마음을 채워준 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한 경제학자가 임종 때 나눴던 대화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가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부유한 직물제조업자 집안에서 태어나 이론경제학과 경기순환에 관한 이론의 대가로, 케인스와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193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 교수를 지냈고 그가 말한 ‘창조적 파괴’는 요즘 경영학계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가 임종하는 순간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아버지와 대화를 했습니다.


“조지프, 자네는 아직도 자네가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말하고 다니는가?”


“지금은, 나는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교수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네.”


이를 지켜본 아들(피터 드러커 박사)은 3가지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지 질문해야 한다.
■ 사람은 늙어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사람이 성숙해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 꼭 기억될만한 가치가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사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인간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사실이 있으면 그게 바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드러커의 말이 새롭게 들리는 아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던지는 하루를 시작하면 신문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뉴스의 메뉴도 달라지겠지요?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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