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는 지금] 수조원 투자하는 그들이 AI와 함께 일하는 법

사모펀드(PE) 업계 대표의 의사결정은 수백·수천억, 때로는 조 단위 자금의 향배를 가른다. 그들이 내리는 한 번의 판단은 펀드 수익률은 물론 산업 지형까지 바꾼다. 매일 보고서, 재무 자료와 씨름하면서 머릿속으론 끊임없이 가설과 반론을 주고 받는다. 매 단계가 한 치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PE의 투자 검토는 산업과 기업을 탐색하고, 1차 가설을 세운 뒤, 실사를 통해 이를 검증하고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통상 진행된다. AI는 지금 이 과정의 바깥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점점 안쪽으로 침투하고 있다. 국내 PE 고위 의사결정자의 AI 활용 사례를 종합해 보면, 크게 세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리서치 단계, 가설 확장 단계, 교차 검증 단계다.

◆리서치 단계 : 보고를 듣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은 정보 습득의 간편화다. 보고를 받기 전에 산업을 먼저 훑고, 기초 자료를 압축해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D사 P대표는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해 실사 보고 전 산업 구조와 주요 쟁점을 선행 학습한다. 기본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보고를 받으니 회의는 설명이 아니라 토론 중심으로 바뀐다.

P사 L대표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주니어가 일주일간 자료를 정리해 올려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직접 AI에 질문을 던지고 몇 시간 만에 핵심 쟁점을 추려낸다. 기초 리서치 단계가 압축되면서 인력은 보다 본질적인 딜 분석에 투입된다.

가설 확장 단계 : AI를 '악마의 대변인'으로= 한 단계 더 깊은 활용도 있다. AI를 사고 파트너로 쓰는 방식이다.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처럼, 일부러 반대 입장에서 논리를 공격하고 약점을 드러내는 역할이다. 알고 싶은 분야나 산업 자료를 입력한 뒤 이렇게 묻는다. "이 논리의 약점은 무엇인가", "왜 이 회사는 왜 성공/실패할 수 있는가". 확신이 클수록 더 공격적으로 질문한다. 특정 기업을 두고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평해 보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내부 투자심의에서 나올 반대 논리를 미리 받아보는 셈이다. 의사결정은 확신의 문제가 아니라, 반론을 견디는 힘이라는 판단에서다. AI는 그 반론을 빠르게 생성하는 도구가 된다.

AI의 검증을 검증하기= S사 M대표는 AI를 "그럴듯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한다. 기술투자에 전문성이 있는 그는 AI의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을 치명적 약점이라 지적했다. 실제 매각 건과 관련해 구체적 질문을 던졌다가 사실과 다른 답변이 나오는 걸 경험한 뒤, 활용 범위를 정했다. 그는 "딜의 세부 내용에 관해서 물어보면 결코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얻어낼 수 없다"며 "대신 시장 일반에 관한 분석이나 현황 점검에는 충분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M대표는 무료 버전은 사용하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안정성과 응답 품질 차이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대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확장… 해외는 조직 내재화 단계로= PE 대표들의 AI 접근 방식은 세부적으론 다르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AI가 결정하는 것은 없고, 결정 직전의 사고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고를 듣는 시간은 줄이고, 질문을 생각할 시간은 늘어난다. 가설을 세우는 속도가 빨라지고, 반론을 준비하는 밀도는 높아진다. PE에서 자본만큼 귀한 자원은 판단, 즉 의사결정의 품질이다. AI는 그 판단을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대표들은 입을 모았다.

해외 대형 PE는 AI와의 동행에서 한발 앞서 있다. 글로벌 PE 블랙스톤은 자체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해 과거 투자 사례와 산업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있다. 딜 검토 시 내부 지식을 실시간으로 호출해 가설을 보강하고 리스크를 점검한다. 개인 단위의 실험적 사용을 넘어, 조직의 의사결정 인프라에 AI가 이미 시스템으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증권자본시장부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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