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박용만은 기업인의 이름으로 더 익숙하지만, 반세기 동안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두산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라는 직함 뒤편에서 그는 언제나 렌즈 뒤에 있었다. 16일 서울 중구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 '휴먼 모멘트'는 그 긴 시간의 축적을 처음으로 세상 앞에 내보인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15일 서울 중구 피크닉에서 열린 박용만 개인전 '휴먼 모먼트'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전시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그의 사진은 화려한 기교보다 오래 남는 잔상을 지향한다. "다시 보고 싶어지는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는 믿음은 사람을 정면으로 드러내기보다 인간의 흔적이 남은 풍경을 오래 응시하게 만든다. 시선은 늘 사람에게 닿아 있지만, 그 접근은 조심스럽고 한 박자 느리다.
사진과의 인연은 고등학생 시절 시작됐다. 아버지가 건넨 오래된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와 짧은 조언이 첫 교본이었다. 소풍날 울면서 병을 줍던 아이를 따라가 셔터를 누른 순간, 그는 사진이 타인의 삶에 조용히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 경험은 상보다 오래 남아, 평생 관찰자의 자리를 자처하게 했다.
이후 학업과 유학, 경영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틈이 생기면 거리로 나섰다. 출장지의 짧은 여백은 곧 촬영 시간이 됐다. 이번 전시는 1971년 이후의 필름 중 80점을 골라 구성했다. 입구에서는 멀어진 뒷모습과 풍경이 먼저 등장하고, 안쪽으로 갈수록 얼굴과 표정이 가까워진다. 장소와 연도를 지운 구성은 관람자가 정보가 아닌 감각으로 사진을 만나길 바라는 의도다.
작품 곳곳에는 빨간색의 리듬과 '프레임 안의 프레임' 구성이 반복된다. 종로의 재개발 이전 풍경, 천안문 사태 전 중국, 북유럽과 유럽의 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건너 인간다움이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물 위의 반사로 생명들이 한 장면에 공존하는 사진이나, 일상의 평온을 담은 인물들은 그의 따뜻한 시선을 증명한다.
전시 말미의 흑백 사진은 시선을 낮춘다.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풍경과 사회적 약자의 모습은 애정과 성찰을 동시에 요구한다. 사진가의 꿈을 잠시 접어두었던 시간 역시 숨기지 않는다. 그 선택의 무게까지 포함해 이번 전시는 그의 삶을 중간 점검하는 기록이다. 기업인의 이름을 내려놓고 인간의 찰나를 오래 바라본 관찰자의 고백이 조용히 걸려 있다.
그는 "좋은 사진은 다시 보고 싶어지는 사진"이라며 "50년 넘게 찍은 사진 가운데 평화로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를 기업가로 떠올리면 익숙한 모습이겠지만, 사진작가로 보면 생경할 수 있다"며 "여기서부터는 사진작가 박용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