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이 조명한 호랑이 잔혹사…왜 일본은 씨 말렸을까

일제의 해수구제(害獸驅除)사업
'정호군' 창설해 한반도 호랑이 잡아
해로운 동물 퇴치한다는 목표 이면에
제국주의 자축·서구 트로피 사냥 모방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인기로 일제 강점기 시절 단행됐던 호랑이 집단 사냥이 해외에 주목받고 있다. 일제 치하 조선 총독부는 해로운 야생동물을 퇴치한다는 명목으로 호랑이를 대거 사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의 제국주의적 야심은 물론 서구에 팽배했던 트로피 사냥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5년간 호랑이 씨 말린 조선총독부

케데헌의 마스코트로 등극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는 한반도 호랑이를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호랑이는 과거 한반도 지역을 서식지로 삼던 시베리아 호랑이의 아종으로, 일제 치하인 20세기 초반 무분별한 사냥으로 씨가 말랐다. 현재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1등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호랑이 캐릭터 더피. 넷플릭스

호랑이 개체 수는 1915년부터 1940년까지 추진된 일제의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사람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을 제거하는 정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 정책은 조선총독부가 담당했다. 조선총독부 발행 잡지 '조선휘보' 기록에 따르면, 전체 사업 기간에 걸쳐 경찰·헌병 등 공권력은 물론 사냥꾼·몰이꾼 등 민간인도 동원됐다.

일본인이 직접 호랑이 사냥에 나선 사례도 있다. 무역 사업으로 벼락부자가 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1917년 '호랑이를 정복한다'는 뜻을 가진 '정호군'이라는 사설 조직을 창설해 한반도 호랑이를 대대적으로 남획했다. 정호군이 한반도에서 벌인 집단 사냥은 훗날 야마모토가 집필한 '정호기(이은옥 번역)'에 상세히 기록됐다.

해수구제 이면엔 제국주의 자축, 트로피 사냥 욕망

왜 일본인이 한반도 맹수 퇴치에 열의를 보였을까.

표면적으로는 해수구제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정호기에 따르면 야마모토는 정호군을 "우리 제국(일제) 청년의 사기를 드높이기 위한 사냥 행사"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야마모토는 정호군 활동의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정호군엔 19명의 일본인 기자도 합류했는데, 이들은 정호군의 활약을 일제 본토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정호군이 사냥한 호랑이. 중앙에 서있는 사람이 정호군을 창설한 일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한국범보전기금

또 야마모토는 일제의 유력 정치인, 기업가 등을 초청해 사냥한 호랑이 고기로 연회를 벌였다. 특히 1917년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벌인 행사에서 그는 "전국 시대 무장인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 당시)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선 호랑이를 잡았는데, 지금 우리는 일본 영토가 된 조선 땅에서 호랑이를 잡았다. 깊은 의미가 있다"고 축사를 전한 바 있다.

서구 열강에 뒤처지고 싶지 않았던 일본인의 속마음이 정호군 활약에 담겨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호군이 활동한 20세기 초는 서구권에서 트로피 사냥 열풍이 불던 때이기도 하다. 트로피 사냥은 오지의 위험한 동물을 사냥하고, 가죽이나 뿔 따위를 박제해 기념하는 이벤트였다. 한반도 호랑이 또한 트로피 사냥꾼의 표적이 됐는데,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 커밋 루스벨트를 비롯한 영미 사냥꾼들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한반도를 탐험한 바 있다.

일본 교토 도지샤중학교에 전시 중인 조선 호랑이 박제를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확인하고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야마모토는 기자들을 시켜 정호군을 홍보하는 군가를 만들었는데, 노래 가사엔 "일본 남아의 담력을 보여주자. 루스벨트가 무엇인가", "올해엔 조선 호랑이를 잡고 내년에는 러시아 곰을 사냥한다" 등 관련 내용이 담겼다. 또 야마모토는 죽은 한반도 호랑이의 가죽을 벗겨 박제해 일본에 기증하는 등 전형적인 트로피 사냥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韓 호랑이 절멸에 조선인도 가담…"일제 명분 먹혔을 것"

야마모토 정호군을 포함한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에는 조선인도 가담했다.

정호기의 해례(해설) 작업을 맡은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아시아경제에 "정호군에 합류한 사냥꾼·몰이꾼 170여명 중 상당수는 조선인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돈 등 물질적 보상을 받고 고용된 엽사들로 보인다. 조선 민중은 일제의 정책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는데 '백성에게 해로운 짐승을 제거한다'는 명분이 먹혔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야마모토의 발언, 정호군의 군가 가사 등을 보면 한반도 호랑이를 완전히 제거해 한국인 정체성을 훼손하려 했다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다"면서 "한반도 호랑이의 절멸은 일본 제국주의의 직접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부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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