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기자
김정상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는 17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에서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계산하는 새로운 기술"이라며 "앞으로 산업 구조를 바꿀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날 '양자컴퓨터와 첨단기술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양자기술이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을 조명했다. 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화, 텔레비전, 사진, 음악 산업은 모두 따로 존재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에 모두 들어간다"며 "앞으로는 교육, 자동차, 컴퓨터 산업도 그렇게 융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술의 융합이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양자기술의 상용화 시점에 대해서는 "언제 정확히 현실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실험실에서 나온 기술이 산업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흐름을 먼저 타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다"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쉬운 비유를 곁들여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과 '얽힘'을 소개하며, 중첩은 "동전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앞면도 아니고 뒷면도 아닌 상태로 있는 것처럼, 양자비트(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얽힘은 "동전을 두 개 던졌을 때 하나가 앞면이면 다른 하나도 반드시 같은 면이 나오는 식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 입자가 연결돼 있다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상 듀크대 교수가 17일 경주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하계포럼에서 ‘양자컴퓨터와 첨단기술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러한 양자 특성을 활용하면, 단지 300개의 양자비트만으로도 우주의 입자 수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계산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양자컴퓨터는 고전적인 컴퓨터로는 수십억 년이 걸릴 문제를 훨씬 짧은 시간에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응용 사례로는 '소인수분해'를 언급했다. 매우 큰 수를 어떤 수로 나눌 수 있는지를 찾는 문제로, 현재 온라인 금융과 암호 기술의 기반이 되는 연산이다. 김 교수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지금 우리가 쓰는 보안 체계 대부분이 무력화될 수 있다"며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강연에서는 현재 김 교수가 연구 중인 '이온트랩 방식'의 양자컴퓨터도 소개됐다. 이는 원자 하나하나를 잡아 정렬한 뒤, 각각에 레이저를 쏘아 계산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그는 "23개의 원자를 일렬로 배치한 뒤, 그 위에 레이저를 정밀하게 조절해 양자 연산을 수행한다"며 "기존 컴퓨터와는 구성 방식부터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실험실 수준을 넘어서 상업용 기술로 향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지금 준비하는 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이라며, 변화의 방향을 앞서 파악하고 움직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