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권해영특파원
미국 중산층 이상 자산가 10명 중 6명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부자 증세'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자 증세를 통해 복지 확대 및 재정적자 축소에 나서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증세안에 중산층뿐 아니라 고소득층 유권자도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23일(현지시간)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주택을 제외한 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인 미국인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는 연 1억달러 이상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재 37%에서 상향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60% 이상은 급속도로 확산되는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91%는 부의 지나친 편중으로 일부 자산가들이 돈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살 수 있다고 봤다. 응답자의 75% 이상은 부자들이 소득 신고나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일반적인 납세자들이 쓸 수 없는 허점과 전략을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응답자의 62%는 억만장자들이 세금 인상을 피하려고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글로벌 세금 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달 브라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논의될 전 세계 억만장자에 대한 부유세 2% 부과 안건에 찬성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59%에 달했다.
조세 정책은 오는 11월 미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증세 추진을 예고했다. 그는 자산 1억달러 이상인 부유층에게 25%를 부유세로 거두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또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37%에서 39.6%로 상향한다는 계획이다.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언급한 1억달러보다 훨씬 낮은 연소득 40만달러 이상인 개인에게 이 같은 세율을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법인세 최고세율도 현재 21%에서 28%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조사를 의뢰한 시민단체 '애국하는 백만장자들'의 모리스 펄 대표는 "미국의 대부분 백만장자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불평등이 우리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고소득층의 지지율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요 외신과 미시간대 로스 경영대학원이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 소득 10만달러 이상인 가계는 경제 정책 운용에 있어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득층의 45%가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응답자는 40%로 5%포인트 낮았다.
한 외신은 "초부유층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증세 구상이 상위 중산층에게도 잘 먹혀들어 가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정책에 있어 손상을 입었지만 일부 미국인 부유층은 그가 공화당 경쟁자보다 더 잘할 것이라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경합주 유권자들은 이미 부자 증세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블룸버그 통신이 여론조사업체 모닝 컨설트와 지난 3월 경합주 7곳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권자의 69%가 바이든 대통령의 부자 증세 구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한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득세를 인하 또는 폐지하는 대신 관세를 올려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법인세 최고세율도 현재 21%에서 20%로 낮추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헤지펀드 억만장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을 비롯한 월가 거물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의사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