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조영주본부장
국무총리에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자들을 종종 본다. ‘당신은 대통령 빼고는 가장 힘 있는 자리에 올랐다’는 의미다. 일종의 아첨으로 들린다.
총리는 굳이 조선시대와 비교를 한다면 영의정 자리다. 행정부만 보면 그리 잘못된 말이 아니다. 위로는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있고, 아래로는 각 부처 장관들이 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국가는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가 같은 힘의 크기로 존재한다. 공직자가 국민 위에 군림하던 시대도 아니다. 그렇지만 총리는 국정을 이끄는 중요한 자리다. 매주 대통령과 회동을 갖고 국정현안을 논의한다. 장·차관들을 통할해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한덕수 총리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새 총리 하마평이 분분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총리가 필요할까.
우선, 총선 결과를 통해 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읽어야 한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108석을 얻었으니, 21대 총선 103석보다 5석을 더 얻었다는 괴상한 해석을 내놓는 이가 있다. 따져 보면 21대 국회에서는 103석에서 시작한 뒤 국민의당, 무소속, 민주당 탈당파 등을 입당시켜 의원 수를 114석까지 끌어올렸다가 이번에 오히려 6석을 잃은 셈이다.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여당은 맥을 못 췄다. 총선 직전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여론조사가 잇따르자 ‘개헌 저지선은 확보해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해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국민은 왜 야당에 표를 더 줘 현 정권을 견제하도록 한 것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으로 민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중동전쟁 우려 등 불안한 대외 경제상황도 지속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올해 1.7%까지 떨어질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예상했다. 2013년 3.5% 이후 지속해서 하락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에는 잠재성장률이 0%에 이를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사회와 경제가 획기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새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개혁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다. 의료개혁을 잘 매듭짓고 연금개혁, 노동개혁 등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에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하고, 이민 확대 등 복잡한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할 단초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반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타협점을 찾아갈지가 관건이다. 총리는 몸소 나서 야당과 대화를 나누고 현실적 대안을 주도해야 한다. 형식적이거나 의례적이지 않아야 한다.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으로 야당을 대해야 한다.
총리의 이런 노력은 우리 사회를 반목과 대결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정치가 날이 갈수록 증오의 정치로 변질하는 데에는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이런 시기에 지도자들은 새로운 틀에서 국민이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몸을 던져야 한다. 권력을 오롯이 국민만 바라보고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활한 언어로 총리에게 아첨하는 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총리는 대통령에게 충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를 통해 대통령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한다. 훌륭한 구원투수가 될 새 총리가 지명되길 소망한다.
조영주 세종중부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