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기자
김대현기자
"시세조종에 쓰인 자금을 몰수해 피해자에게 환부해주는 제도 자체가 없다."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형사고소를 맡은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대표변호사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아도 향후 환부 절차에서 피해자를 구제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상준 변호사는 "불공정거래는 피해자가 있는 사건으로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 보전해 놓은 것을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절차가 없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80여명의 투자 피해자가 한상준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피해 규모만 1700억원. 한상준 변호사는 "그동안 맡았던 사기 사건의 피해금액은 보통 7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 수준이었다면 라덕연 사태로 인한 인당 피해 금액은 20억원이 넘는다"면서 "라덕연이 투자자 동의 없이 개설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통해 레버리지(부채를 끌어와 자산을 매입하는 투자)를 일으킨 탓에 투자금 피해가 배로 불어났다"고 전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A씨가 13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실이 260억원으로 곱절이 된 이유다.
한 변호사는 라덕연 일당이 벌인 이번 사태에 대해 "시세조종과 사기가 결합한 폰지 사기"라고 정의했다. 그는 "외형상으로 보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시세조종 행위와 관련된 범죄지만 이면에서 보면 시세조종을 위한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투자자의 돈을 편취한 것"이라고 봤다.
폰지 사기란 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나눠주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말한다. 한 변호사는 "한 사람이 단기로 시세조종을 몇 달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라덕연 사태는 A그룹 돈으로 B그룹 주식을 사고, B그룹 돈으로 그룹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3년에 걸쳐 주가를 천천히 올렸다"고 설명했다.
3년 전부터 조직적으로 주가조작을 해온 라덕연 일당은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직업인 의사와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 가치투자를 한다고 꾀어냈다. 한 변호사는 "라덕연은 유명연예인과 기업가, 의사들에게 접근했다"며 "피해자 두 명 중 한 명이 의사"라고 했다.
주식거래를 통해 발생한 수익률이 50%에 도달하면 나머지 절반은 수수료 명목으로 본인이 챙기고 절반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고 했지만, 수익금을 재투자하라는 라덕연 일당의 말대로 이를 재투자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을 가해자와 동일선상에 놓고 너희들도 다 알고 핸드폰을 제공하고 시세조종에 동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면서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라고 전했다.
본인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을 전달한 점은 위법행위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개인 위탁매매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 주가조작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입단속을 시키고, 우량주로 갈아탄다고 선동한 사람들은 공범이지만 나머지 90%는 위탁매매로 돈을 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실제로 가해자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절대 우리 로펌을 찾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범으로 분류된 자들은 라덕연과 같이 구속되거나 기소가 많이 됐고, 이 사건의 특성상 보안이 핵심이라 시세조종과 관련된 정보가 새어 나가는 순간 바로 압수수색을 당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피해자 80여명이 형사 고소를 추진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는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건인데 투자자들을 모두 공범 프레임에 가둬놓고 투자 피해 금액을 모두 국고로 몰수하는 점이 불합리하다고 봤다. 한 변호사는 "라덕연이 취한 부당이득 중 일부라도 피해자들 몫으로 돌아가려면 라덕연이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며 "기소만 하면 유죄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형사고소장을 3번이나 넣었는데 검찰에서 한 번도 기소를 안 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사 절차와 방식도 문제 삼았다. 한 변호사는 "시세조종을 인지해서 조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서 "금융감독원은 강제 수사권이 없고, 금융위원회가 가진 수사권도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진 권한과 비교하면 너무 약하다. 통신 조회도 불가능하고 출국금지 조치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금융당국이 가진 권한으로는 조사에 한계가 있고, 절차상의 이유로 조사 속도도 더디다 보니 시세조종 행위 적발건수도 현저히 적다. 한 변호사는 "작년 자료를 보면 시세조종 행위 적발 건수가 두 건에 불과하다"며 "두 건만 있을 리는 없고, 시세조종 행위를 모두 잡아내지 못했거나 수사 여부를 결정하는 사이 자금 세탁이 이뤄지고, 증거 보존도 안 돼 기소를 하고도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난해 라덕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자본시장법이 개정됐을 때, 피해자를 위한 환부 절차나 조사권 강화에 대한 부분들이 깊이 있게 논의되고 관련 법도 손질됐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그는 범죄수익과 관련된 환수 절차도 좀 더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몰수·추징 보전된 범죄수익금액을 사기 피해자들에게 '범죄수익 환부' 절차를 통해 돌려주기까지 형사 재판이 확정된 이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며 "언제까지 해야한다는 규정도 없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몇년이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피해구제 절차를 국내법상 절차와 비교해 필요한 부분은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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