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기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미혼모 '팡틴'으로 출연 중인 배우 조정은은 레 미제라블의 가치를 이같이 설명했다. 계원예술고등학교 재학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꾸고 2001년 서울예술단 앙상블로 데뷔한 뒤 24년째 정상급 배우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조정은을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만났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80년 프랑스에서 세계 초연했다. 영국 웨스트엔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는 각각 1985년, 1987년 초연했다. 웨스트엔드에서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초연은 2013년이다. 2015년 재연에 이어 올해 세 번째 공연을 하고 있다. 조정은은 세 차례 공연에서 모두 팡틴으로 출연했다.
팡틴은 어린 딸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주인공 장발장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미혼모다.
조정은은 팡틴이 순결함, 순수함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팡틴의 인생 최대 목표는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원작 소설을 보면 팡틴의 첫사랑이라고 하는 그 남자는 훌륭하지도 않고 팡틴을 정말 사랑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팡틴은 사랑에 대한 순수함이 있는 것 같다."
팡틴의 순수한 삶은 처참한 비극으로 끝난다. 팡틴은 미혼모라는 사실이 발각돼 공장에서 쫓겨난다. 양육비를 구하기 위해 긴 머리를 잘라서 팔고, 사창가까지 기웃거린다. 하지만 끝내 병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고 어린 딸 코제트는 홀로 남겨진다.
"팡틴은 순수한데 세상이 그렇지는 않다. (팡틴의 삶은) 완전히 처참하게 짓밟힌다. 위고가 그게 세상이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자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위고는 옳고 그름을 얘기하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과 같은) 것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게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팡틴은 1막 중간 부분에서 장발장에게 딸을 부탁하고 죽음을 맞는다. 이후 죽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맨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장발장이 숨을 거두는 장면이다. 팡틴은 장발장의 죽음을 인도해줄 천사처럼 등장해 장발장에게 온화한 미소를 건넨다. 팡틴을 잘 키워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장발장에게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으니 편안히 눈을 감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실제 장발장은 자신의 친딸도 아닌 코제트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굳이 장발장이 코제트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이유를 찾자면 팡틴이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다 쫓겨났다는 이유 때문으로 볼 수 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조정은도 "팡틴이 공장에서 쫓겨날 때 자신이 팡틴을 외면했다는 사실에 장발장은 굉장한 죄책감을 가졌을 것 같지만 그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정은은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리엘 주교는 극 초반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혀온 장발장을 구해주는 인물이다. 주교는 은촛대를 자신이 선물한 것이라며 경찰을 설득하고, 이는 장발장이 새 삶을 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다.
"장발장이 주교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에 장발장 또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코제트를 자기 딸처럼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팡틴에게는 장발장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준 미리엘 주교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레 미제라블은 장발장과 팡틴 모두 혁명기 프랑스의 냉혹한 현실에서 고통을 겪지만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로부터 배운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본인은 물론 코제트를 통해 팡틴도 구원을 받는 이야기인 셈이다.
조정은은 "근본적으로 누구에게나 한 번쯤 고민해 봐야 될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잘 만들어진 작품을 하는 공연한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만큼 레 미제라블의 네 번째 무대가 언제 마련될지는 기약이 없다. 조정은은 "이번이 내가 하는 마지막 팡틴일 것"이라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