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야심이 노골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이에 대비해 대만에 배치된 미 병력을 현 4배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미 의회 내에서는 중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시급히 대만을 무장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미 관리들을 인용해 향후 몇 달간 대만에 100~200명의 미 병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1년 전 30명과 비교해 대폭 늘어난 규모다. WSJ는 "미국이 대만에 수십 년 내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을 배치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대만군 훈련 프로그램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 소식통은 미시간주(州) 방위군이 캠프 그레일링에서 여러 국가와 함께 시행 중인 연례훈련을 비롯해 미군의 대만군 부대 훈련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추가 파병된 부대는 미군 무기 훈련 체계를 교육받는 것은 물론, 중국의 공격 시 스스로를 보호할 군사적 기동 훈련 등에 나서게 된다.
특히 이러한 조치는 최근 몇 년간 대만을 겨냥한 중국의 야심이 노골화하고 미·중 관계가 악화한 가운데 이뤄졌다. 2016년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취임한 이후 중국은 인근 해협에서 전투기, 상륙함 등을 동원한 대규모 실전훈련을 하는 등 군사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작년 8월에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이유로 대만 봉쇄 군사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미관리들은 최근 미·중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킨 중국 정찰풍선 격추와 관련해서는 훨씬 이전부터 이러한 군사력 증강이 계획됐다고 확인했다.
그간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을 경우 군사적으로 개입할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야심이 노골화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고도 밝힌 상태다. WSJ는 "대만 관계는 미·중 관계의 오랜 화약고"라며 "중국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필요시 무력으로 장악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만 통일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 인도태평양사령부와 국방부, 백악관은 이번 병력 확대와 관련한 WSJ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마티 마이너스 국방부 대변인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국방 관계는 현재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 일치하고 있다"며 "대만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확고하며, 대만해협과 역내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냉전시대 동안 대만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후 중국과 1979년 수교하고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이들을 철수시켰다. 전 세계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한 분기별 보고서를 작성 중인 국방인력 데이터센터에 따르면 대만 내 미군은 2022년 봄 30명에서 같은 해 여름 26명, 가을 23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미 군사정보 당국은 중국이 인민해방군 건군 100년이자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4기가 시작되는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준비를 갖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 의회 조사국(CRS)은 최근 보고서에서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군이 현대화되면서 양안의 군사력 균형이 중국에 유리하게 전환됐다"며 "대만의 군사 역량은 높지만 예산은 중국군의 10분의 1도 안 되며 장비, 준비 태세의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는 미 일각의 주장도 언급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 역시 최근 미 하원 군사위원회의 공개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미국이 대만 정책의 전략적 모호성을 접고 대만을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태평양군사령관을 지내기도 한 그는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 공격하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게 전략적 명확성"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로부터 대만 내 무기 지원 확대, 대만 부장의 시급성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4일간의 대만 방문 일정을 마친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중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역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침공을 막고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대만에 실질적인 군사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방문 중) 만난 모든 대만 관리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경종을 울렸다고 언급했다"면서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인도) 지연이 주요 대만 지도자들 모두가 가지는 우려였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대만의 미인도 무기 규모는 190억 달러(약 24조원)에 달한다.
갤러거 위원장은 향후 미·중 전략경쟁특위를 활용해 "대만 무장의 시급성"을 강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총력을 동원해 대만을 완전 무장시켜야 한다"며 특히 하푼 미사일을 인도받는 데 있어 대만이 가장 선순위에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화당 지도부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예산안 내 대만에 대한 무기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만 역시 국방 예산을 14% 늘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2.4% 규모로 확대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갤러거 위원장은 덧붙였다. 그는 올여름께 대만에서 특별위원회 청문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중국 당국을 대변해온 관변 언론인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전날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글을 올려 "중국은 평화통일을 원하지만,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무력으로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큰 위험은 미국의 군사 개입"이라며 "대만 해방전에 앞서 100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해 강력한 핵 억지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러한 중국의 억지력이 미국의 대만전 참전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