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패권국에서 멀어지는 中…'유럽을 잃었다?'[우크라충격파⑧]

中,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과도 갈등10년 공들인 협력관계 급속냉각리투아니아 경제보복부터 러 지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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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중국은 유럽을 잃을 것인가." 유럽과의 관계에 공을 들이며 유라시아 대륙에서 '특별한 영향력'을 꿈꾸던 중국의 노력이 위기에 봉착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명확한 비난도 동조도 없이 침묵을 이어온 데 대해 유럽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다. 지난 4월 유럽연합과의 화상 정상회의에서 제기된 적극적 역할론에 대해 중국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귀머거리의 대화같았다(dialogue of the deaf)"면서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양측의 대화는 현재까지 답보 상태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특히 중부와 동부 유럽 국가들을 외교의 핵심에 뒀었다. 미국과 비교해 지정학적 긴장이 덜한 유럽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었고, 유럽 입장에서도 중국은 대규모 투자 잠재력을 갖춘 강력한 파트너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4개월여가 지난 현재, 유럽은 중국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것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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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들인 협력관계 '급속냉각'= 중국의 광범위한 유럽 전략은 10년 전인 2012년 4월 파트너십 체결을 거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중동부 유럽 11개국과 발칸반도 5개국의 손을 잡고 '16+1' 협력체를 발족했다. 이후 2019년은 그리스가 합류해 17개국 협력체로 몸집을 키웠다가, 2021년 리투아니아가 조약을 포기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바르샤바에서 시작된 이 협력체를 중국의 영리한 전략으로 평가했다. 대부분의 파트너국이 EU 회원국이었으므로 중국은 서유럽의 선진경제와 직접 경쟁하지 않고도 최대 교역권에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듬해인 2015년 중국은 서부 진출을 위한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 사업에 나섰고, 아시아·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등에 대형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균열이 발생했다. 거대한 목표와 비교해 일대일로의 이행계획과 방향은 다소 허술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서구 투자자를 찾지 못해 방치된 오래된 공장과 프로젝트를 중국의 투자금이 되살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유럽 내에서 커졌지만, 실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일례로 2013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협력체 회담에서 중국, 헝가리, 세르비아는 베오그라드와 부다페스트 사이의 고속 철도 노선을 놓는 3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논의했으나, 10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결과물은 없다.

중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중국과 유럽 간 무역은 2012년에서 2020년 연간 8% 늘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동안은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출발선이 희미해 여전히 절대 규모는 크지 않다.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동부 유럽지역 수출의 2% 미만, 수입의 9% 정도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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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경제보복이어 러 지원까지= 그러던 와중 수도 빌뉴스에 타이완 대표처를 개관하며 반중행보를 보였던 리투아니아에 지난 2월 중국이 수출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물론 당시 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리투아니아에 친대만 입장을 철회하도록 압박하는 등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일대일로 사업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대만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모습에 유럽 지도자들도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어 올해 1월 EU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리투아니아 수출입 금지 조치는 차별적 관행이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과 유럽의 관계를 더욱 냉각시켰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한 곳인 체코는 4월 대만을 지지한 리투아니아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16+1' 협력도 힘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지난해 이미 6개 회원국이 국가 수반을 회담에 불참시켰고, 올해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려던 중국의 목표는 그 기반이 될 유럽의 민심을 잃으며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반면 원자재 대국 러시아와의 교역을 늘리며 중국은 미국의 일극체제에 저항하는 다극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올해 5월 중국과 러시아 간 월간 통화 거래량은 40억달러(약 4조9612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1067% 급증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은 일부 신흥시장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부 석유 계약의 가격을 위안화로 책정할 계획이며, 인도는 루피-루블 지불 구조를 모색중이다. 최근의 추세가 이어지며 터키·이란·인도 등이 중러 세력에 힘을 실을 경우 새로운 연대로 힘의 분산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현재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보이는 '중도적 태도'는 외교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철저히 계산된 '균형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옌쉐퉁 칭화대 교수는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비난에 동참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결코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미국과 군사력 격차가 크므로 세계의 안보문제, 특히 전쟁 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는 야심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외교목표"라면서 "미국이 대만의 법적 독립 선언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 한 중국은 이러한 평화적 발전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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