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B]'장애, 정체성 하나일 뿐 실패가 필요해' 연극하는 미진·지원씨

당당한 소수, 더 나은 비주류 세상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서지원 팀장·김미진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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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발달장애여성 영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자신이 직접 받고 싶지만 본인 명의로 된 통장 하나 만들기가 어렵다. 비장애인 남성과 결혼해 두 아이를 둔 현주. 워킹맘인 그는 주말 오후 회의에 참석하지 못 한다는 연락조차 할 수 없다. 오랜 기간 묵묵히 극단 활동을 해온 장애 여성 예슬은 여전히 같은 질문 받는다. "당신은 예술가입니까?"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가 제작한 연극 '불만폭주 라디오' 속 이야기다. 연극 작품처럼 한 개인에게는 여러 정체성이 있지만 장애라는 정체성은 유독 많은 것을 무력화 시킨다. 불만폭주 라디오는 장애여성들의 생생한 삶과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일상 소재를 엮어 만들어졌다.

극단 춤허리에서 십여 년 간 자리를 지켜 온 서지원(40) 팀장과 김미진(53) 배우를 서울 강동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에서 만났다. 극단에 입단한 사연부터 우리 삶 속에서 마주하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을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지원 팀장과 김미진 배우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 한 집회 현장에 참여했다. '환호와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행진했다'는 서 팀장(왼쪽)과 김 배우의 모습. (제공=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극단 '춤추는허리'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서지원= 1998년 장애여성공감이 만들어졌고 장애를 갖고 있던 우리가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문화제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2003년 극단 춤추는허리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저는 그 다음 해에 들어왔다. 아는 언니가 연극을 한다고 해서 보러 갔다가 나하고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무대에서, 그것도 나와 같은 장애여성이 하니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인권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진 못 했고 그냥 저렇게 연기를 해보고 싶다 하면서 오디션을 봤다.

김미진= 저는 정말 데뷔가 우연이었다. 장애여성학교 퀼트반에 퀼트를 하러 왔다 팀원 중 DJ역할을 하고 있던 한 명을 대신해서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연출의 제안으로 하게 됐다. DJ 역할이어서 용기를 냈던 것 같다(불만폭주 라디오에서 사연을 소개하는 사회자 역할). 그래서 첫 공연은 크게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다 보니 삶 속에서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차별이었음을 알게 됐고 불만에 멈추지 않고 저항도 했었던 일상을 공식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11년째 이런 과정들이 삶을 성숙하도록 이끌어주는 것 같다.

춤허리는 공감의 가장 오래된 자조모임이자 장애여성의 경험을 문화 예술로 승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체장애여성 중심으로 활동해 오던 춤허리는 몇 년 전부터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 다양한 장애여성이 함께하고 있다.

▶두 분 머리 스타일 멋지다. 김 배우는 은빛이 도는 초록색과 파란색 사이, 서 팀장은 옅은 와인색에 가까운 빨간색이다.

김미진= 흰 머리 때문에 한 거다. 원래 파란색이었는데 이렇게 됐다. 원래 초록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자화상 만들 때 내 머리를 초록색으로 한 적이 있다.

서지원= 머리 스타일에 좀 민감하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관리하기 쉽다고 파마 머리를 자주 해주셨다. 요즘 사실 이렇게 해야 세게 보여서 말을 안 건다. 센 언니 콘셉트로 가면 말을 안 걸어서 좋다. 지하철이나 길거리를 지나면 수시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도와줄까 하면서 만지기는 기본이고 어깨며 휠체어까지 만진다. 머리 색깔을 바꾸고 짧게 자르니까 아무도 말을 안 건다. 다른 여성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경우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장애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배제되고 타인에 의해 결정 될 때 장애 실감폭력과 권력 있다면 집·학교도 시설"좋은 선택·결정 위해 실패도 해봐야"

▶코로나 시대 어떻게 보내고 있나

서지원= 한 번은 스스로 자가격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대책이 없더라. 우리 애들 어디 보낼 수도 없었고. 막상 코로나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나부터 시작해서 누구한테 활동 지원을 받아야 하는 건지 막막했다. 활동 보조님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먹을 것도 막 미리 사놓고 인터넷 쇼핑도 했다. 둘째가 밖에 나가 놀고 싶어 했는데 자가격리 기간 동안 밖에 나가지 않더라. 왜 안 그러냐고 물으니 혹시나 걸려서 애들이 코로나라고 놀릴까 봐 못 가겠다고 했다.

김미진= 세계가 쓸데없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웃음). 우리 친척들 소식보다 코로나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세계 미디어 대부분이 코로나와 이상기후를 주제로 정보를 주고 받고 있으니까.

▶장애라는 정체성은 언제 인지하게 되나

서지원= 나는 똑같이 얘기하고 웃고 같은 표정을 짓는데 사람들은 다르게 본다. 또 계속 어디에선가 배제되고 기회를 잃게 되고 하면서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사회가 문제인 건가 하는 이런 기분을 어릴 때 느꼈다. 최근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얘기하고 있는데 왜 내 얘기를 사람들이 못 알아듣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김미진= 장애를 가진 저 자신한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본연의 모습이다. 그런데 나 아닌 타인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관리가 될 때, 타인 중심의 소통이 자주 되는 상황들이 포함 될 때 느낀다.

'2018 서울 비엔날레/주제:좋은삶' 에 춤추는 허리가 전시와 퍼포먼스로 참여했다. 당시 포스터 작업을 했었고 김미진 배우가 개인컷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서울시립시립미술관 마당에서 찍은 사진. 손재주가 좋은 김 배우는 재활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만든다고 했다. (제공=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접점 교육은 언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김미진= 어린 시절, 초중고 시절부터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로부터 배제돼 왔었다. 거리두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고 나서 스스로 거리를 좁히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특별한 관계를 맺어 봤거나 경험이 있던 사람들 말고는 장애인을 만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만나야 한다. 예를 들어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다른 몸을 상상할 수 없는 인식과 교육이 가장 강하게 이뤄지는데 이런 정상성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결국 사회로 확장된다고 본다. 어느 순간 어느 시기에 교육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나기 전부터 해야 된다. 경증 장애인이지만 초중고 다닐 때 같은 반 친구와 손잡고 화장실을 간 경험이 없었다. 아이들이 날 무시했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런 분위기였다.

서지원= 다 자기 얘기가 있고 살아 온 게 있는데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학교 있을 때도 보지 못 했고 길거리, 마트에서도 보지 못 했다.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여성과 조직한 모임에서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보고 서로 물어보게 된다. 사회가 배제가 필요한 것 같아서가 아닐까 답한다. 다양한 모습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살고 있는데 계속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 왜 필요한 가에 대한 질문은 사회가 조금씩 다양한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11월 공연 예정인 작품 '빛나는'은 탈시설에 관한 얘기다. 시설이 그렇게 장애인들을 압박하는 지 최근에야 알았다.

김미진= 사람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는 문화가 있다. 장애인을 장애인 단체로 대한다고 할까. 국가는 장애가 있거나 누군가 가까이 하기 어렵다 하는 사람이 생기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정책들이 써버린다. 그래서 시설들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내가 장애인이어서 시설에 살고 있지만 그 누군가도 장애인이 됐을 때 소수자가 됐을 때 똑같은 정책에 포함되는 것인데 왜 자꾸 배제하려고 하는 것일까. 나도 기숙사라고 해서 20대 초반에 한복 배우러 갔던 곳이 있었다. 무료로 한복 배우는 곳이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시설이었다. 시설이 꼭 공적인 시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집, 학교도 시설화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정 내에서도 폭력이 있고 권력이 있다면 시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들을 춤허리에서 나눴다.

서지원= 학교가 특히 심하다. 권력이 있고 규칙이 있고 그런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보니까. 장애인들을 한 곳에 모아 두는 게 국가는 보호한다는 의미인데 다양한 교육 시설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불만폭주 라디오에서 서지원 팀장이 세 번째 씬(Scene) '나는 예술가입니까'라고 관객에게 질문하면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결국 저는 비장애인의 공연을 그럴 듯하게 흉내내는 그런 공연만을 해왔던 걸까요?"라는 멘트가 인상적이다. (제공=장애여성극단 춤추는허리)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많이 못 하셨을 텐데 11월 공연이 기대된다.

서지원= 작가님이 계시긴 하지만 저희 경험을 토대로 대본화 하고 있다. 같이 워크샵을 하면서 얘기를 만들어 나간다. 코로나 여파로 아직 극장을 정하지 못 했다.

김미진= 불만폭주 라디오의 첫 번째 이야기도 작가님이 발달장애인님과 함께 은행에 가면서 알게 된 일들을 중심으로 쓰였다. 왜 발달장애인은 통장을 만들지 못할까 함께 고민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관객과 영상작업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다.

김 배우와 서 팀장은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일상의 차별들을 인식할 수 있고 피해 상황에 처했을 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식적인 지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미진=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취미로 비닐과 플라스틱 등으로 꽃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오늘 아침 너저분한 집을 청소하다가 문득 내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닌가 싶었다. 내 선택과 결정으로 생긴 공간이 있고 생각을 표현할 도구와 방식을 갖고 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서지원= 계속 보호 받거나 통제 받으면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져서 어떤 걸 먹고 싶어 하는지 얘기가 하기가 어려워진다. (내가 김밥을 먹고 싶은데 떡볶이만 주면 너무 지겹잖아요) 계속 사람들이 안 돼 하지마 먹지마 하니까 먹고 싶어도 얘기를 하지 못 하게 된다. 장애여성공감 예전 대표님이 삼대 '마'가 있다고 했다. '먹지마, 하지마, 가지마'.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회조차 없다.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왜 하지 말아야 하는 지를 생각하고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요즘 조직이 생기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요즘 뉴스에 수화 통역사도 나온다. 우리가 실패하면 할수록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택과 결정은 모두 실패를 해봐야 아는 거니까.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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