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수습기자
노숙인에게 '노반장', '형님'으로 불리는 노숙인전담 경찰관
서울역·영등포역 노숙인 밀집 지역 특화 업무
한땐 노숙인에 멱살 잡혔지만 이젠 서로 안부챙겨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인근을 순찰 중인 정순태(58) 경위가 노숙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 경위는 2010년부터 영등포역파출소에서 노숙인 전담 경찰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진=전진영 기자)
[아시아경제 전진영 수습기자] 영하의 추위가 불어 닥친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역 앞. 검정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노반장'이 노숙인 무리 사이에서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식사는 했습니까"라는 노반장 질문에 노숙인들은 오히려 그의 끼니를 챙겼다. 영등포역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노숙인 관리 반장(노반장) 정순태(58) 경위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노숙인들을 둘러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서울 시내 지구대나 파출소에는 해당 지역에 특화된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이 있다. 노숙인이 많은 서울역과 영등포역 일대에는 노숙인 전담 경찰관이 있다. 노반장 정 경위가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2010년부터 영등포역파출소에서 노숙인 전담 업무를 맡아온 베테랑이다.
정 경위가 노반장이란 별명을 얻기까진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10년 전 영등포역 대합실엔 노숙인 150명 정도가 모여있었고, 정 경위는 노숙인들로부터 멱살을 잡히기 일쑤였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정 경위는 노숙인 대응 매뉴얼도 만들었다. 노숙인들이 지원금을 술값으로 탕진할까봐 돈을 맡길 수 있는 보관함을 설치했고,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라며 업무에 필요한 안전화 대여 서비스도 안착시켰다. 정 경위는 "노숙인들이 시민과 서로 불편하지 않게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며 "이 업무를 하며 정년까지 남은 3년을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역파출소 소속 한진국(58) 경위가 서울역 광장을 돌며 노숙인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서울역 일대 노숙인 200명을 관리하는 한 경위는 노숙인들에게 '형님'으로 불린다. (사진=전진영 기자)
서울역파출소에도 정 경위 못지 않은 베테랑이 근무한다. 한진국(58) 경위와 함께 순찰을 도는 내내 주변에서 '형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노숙인 박정구(50)씨는 "한 경위는 항상 먼저 다가와 우리 안부를 챙긴다"며 "우리에겐 큰 형님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한 경위가 순찰 중 한 노숙인에게 다가가 "어머님 잘 계셔?"라고 묻자, 노숙인은 퉁명스레 "몰라요"라고 무뚝뚝하게 답했지만 그의 표정에는 묘한 안도감이 돌았다.
2016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은 1만10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서울에 3600명 정도가 모여 있고 서울역 일대에는 200여명이 있다. 한 경위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노숙인들이 나은 삶을 살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다.
전진영 수습기자 jintonic@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