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그날 이후/진은영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 줘 하은 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 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 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 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 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 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 줘  나의 쌍둥이 하은 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 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 줘 고마워  (중략)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 이 시에는 이런 부기가 적혀 있다. "예은이가 불러 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 적다." 나는 다만 다시 옮겨 적을 뿐이다. 유예은 양은 삼 년 전 그날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금도 여전히 2학년 3반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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