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의 디스코피아 35] The Monkees - Changes(1970)

변화 끝에 맞이한 '끝'

The Monkees - Changes

미국을 점령한 비틀즈 열풍에 대항하여 기획된 몽키스는 철저히 훈련되어 전파를 탔다. “비틀즈가 되고 싶어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가상의 밴드(미키 돌렌즈, Micky Dolenz)”를 보여준 TV쇼는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첫 앨범 ‘몽키스(The Monkees)’는 불티나게 팔렸다. 당시 이들의 인기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1966년 데뷔를 준비하던 데이비드 존스라는 영국 뮤지션이 있다. 그는 몽키스의 데이비 존스(Davy Jones)와 혼동될까봐 예명으로 데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예명은 데이빗 보위(David Bowie)다.하지만 이들은 진짜 밴드가 아니었다. 연주는 세션들이 맡았고 멤버들은 코미디를 연기하고 만들어준 노래를 부르면 되었다. 이 상황에 불만을 가진 멤버들이 있었다. 돌렌즈와 존스는 배우 출신이었지만 마이크 네스미스(Mike Nesmith)와 피트 토크(Pete Tork)는 뮤지션 출신이었다. 특히 네스미스는 ‘모어 오브 몽키스(More of Monkees)’ 앨범부터 자작곡을 일부 수록하며 자아를 드러낸다. ‘헤드쿼터스(Headquarters)’부터는 멤버들의 자작곡의 비중을 높이고 투어를 돌며 조금씩 진짜 밴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출생의 한계와 그 편견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1970년에 발표한 ‘변화’라는 앨범의 제목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멤버구성과 팀의 정체성에는 변화가 있었다. 토크의 탈퇴에 이어, 그룹의 정체성을 구축하려 애쓰던 네스미스마저 팀을 떠났다. 재킷 속엔 배우 출신이던 두 멤버만 남았고 몽키스의 음악은 다시 그룹의 손을 떠나 프로듀서의 기획 하에 놓였다. 두 멤버는 각각 한 곡씩 쓰긴 했지만, 이를 빼면 보컬 외에 맡은 일이 없다. 몽키스는 원래 기획 상품이었으니 단순히 원래대로 돌아간 걸지도 모른다.그래도 ‘체인지스’는 꽤 들을만하다. 전문가들의 작곡, 연주 및 녹음을 맡고 두 멤버의 나름 괜찮은 보컬을 더한 분업 체계는 모든 곡을 평균 이상으로 만들며 ‘다음 곡’ 버튼을 접어두게 만든다. 백화점의 상품 진열창처럼 수록곡들의 장르도 다양하다. ‘텔 마이 러브(Tell My Love)’ 같은 발라드, 자장가 같은 ‘티켓 온 어 페리 라이드(Ticket on a Ferry Ride)’에다 꽤 ‘오 마이 마이(Oh My My)’와 ‘나인티 나인 파운즈(99 Pounds)’같은 록음악도 갖춰졌다.앨범은 다양성의 보고 같지만 결국은 사랑 메시지로 무장한 버블검팝으로 쉽게 묶여버린다. 의도적인지 모르지만 노래가 전부 낮은 음역인데다 앨범의 색이 따듯한 톤으로 일관되어 그런지 겨울엔 종종 생각난다. 몽키스는 진짜 뮤지션이 아니란 이유로 폄하당해왔지만, 가수의 영역에서 생각해보면 이 앨범을 굳이 나쁘다 할 이유도 전혀 없다. 다만 변화라는 제목은 반쯤 틀렸다. 이 앨범은 밴드의 변화가 아닌 끝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 재결성 때까지 몽키스의 앨범은 히트곡 모음집 외엔 발매되지 않는다. 상품 가치가 떨어진 가수에게 허락된 변화는 ‘단종(斷種)’인 모양이다.

서덕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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