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닭똥집

음식을 만드는 소리에서도 고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실내 포장마차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그곳에서 닭똥집 구이를 맛본 이들이라면 그 유혹을 참기 어려웠다. 테이블 대여섯 개가 전부였던 작은 실내 포장마차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닭똥집 구이 맛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주인아저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철판구이 뒤집개를 움직였다. 그 손놀림에 따라 닭똥집은 노릇하게 구워졌다. 적당히 깨도 뿌리고, 후추도 뿌려가며 이리저리 뒤집으면 한 접시의 닭똥집 안주로 변신했다. 한 접시 가격은 6000원. 대학생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때 아주 싼 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20년 전 기준으로도 짜장면 두 그릇 값에 불과한 그 가격이 비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노릇하게 익은 닭똥집 구이에 초장과 기름장을 찍어 입에 넣으면 그 맛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질 무렵, 그곳은 손님으로 더욱 붐볐다. 닭똥집을 시키면 따끈한 '술국'이 함께 나왔다. 진한 국물에 파를 송송 썰어 넣은 게 전부였지만, 뜨끈한 술국은 그 자체로 훌륭한 안주였다. 가끔 운 좋은 날에는 각종 잡고기가 수북하게 섞여 있는 제대로 된 술국을 받아들 수도 있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마늘과 고추, 총각김치 등을 곁들여 소주 한잔, 닭똥집 안주 삼아 또 소주 한잔, 뜨끈한 국물 안주 삼아 소주 한잔하다보면 소주병은 테이블 위를 가득 메웠다. 그곳은 주당들의 사랑방만은 아니었다. 그곳 특유의 사람 냄새가 그리운 이들도 그곳에 모여들었다. 작은 테이블에 네 명이 둘러앉으면 서로의 머리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대단한 안주는 아닐지라도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닭똥집 구이가 앞에 놓여 있었고, 마음이 통하는 친구·선후배가 한 공간에 있었다. 그들은 삶에 관해 얘기했다. 학창 시절에 대한 고민도 나눴고, 가정사에 대한 얘기도 주고받았다. 이성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또 하나, 그곳의 특징은 세상의 다양한 이슈를 논하는 토론의 장이었다는 점이다. 그 시절 학생들은 정치·사회·경제 쟁점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별다른 형식 없이 소주잔을 마주치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때로는 우기기 논쟁으로 흐를 때도 있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만은 잃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시절 청춘들도 사회의 일원이 됐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위치가 됐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겨운 처지가 됐다. 자신을 가꾸는 데 서툴고, 촌스러운 옷차림과 외모로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비록 '아재' '꼰대' '옛날 사람'으로 불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사회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공유했던 경험이 있다. 그게 바로 사회적인 자산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이런 때일수록 사회를 연결하는 교감의 끈이 중요하지 않을까.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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