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박지웅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매미가 울면 그 나무는 절판된다 말리지 마라 불씨 하나 나무에 떨어졌다  
  매미가 운다. 밤낮 없이 운다. 징그럽게도 운다. 매미가 우는 까닭은 다들 알다시피 짝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매미의 울음소리는 실은 곡진한 사랑 노래인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쳐도 그 정도가 심하긴 심하다. 특히 도시에서 유독 그렇다. 그 이유는 도시가 너무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란다. 매미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라. 칠 년 만이다. 칠 년 만에 세상에 나왔는데 하필이면 대도시고 그것도 대도시 한가운데고 게다가 대도시 한가운데 건너편 나무와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나무 위라면 황당하지 않겠는가,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고작 한두 주일이라면 사력을 다할 수밖에, 나무를 통째로 태워 버릴 기세로 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문득, 매미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지금 어디에선가 뜨거운 "불씨"로 울고 있을 그런 사람들에게 참 미안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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