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여행가의 밥] 하회마을 온돌방과 농가 밥상

안동 여행은 늘 가벼웠으면 했다. 자연을 벗하며 느리고 느리게. 그런데 저절로 마음 수행이 되기 마련인 깊은 산골 봉정사에서조차 역사와 건축에 대한 갈증이 쉬 가라앉지 않는다. 헛제삿밥을 받고서도 음식 한 그릇에 담긴 궁금증이 샘솟는다. 책을 펼쳐보며, 때로는 문화 해설사분들의 위대한 도움을 받으며 둘러봐야 할 안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안동학(安東學)이라는 지역학이 존재하는 고을이며 한국 정신문화의 도읍이라 칭할 정도로 문화재와 문화유산이 즐비한 선비 마을에서는 학구파 여행자로 변신하기 쉽다.

여러 번 안동을 찾다 보니 사람들로 넘쳐 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던 하회마을에서 고요를 찾을 수 있었다. 오래된 한옥의 온돌방과 농가의 아침 밥상, 그리고 이른 아침 마을을 호위하고 있는 소나무숲 산책은 병신년을 견디며 살아내야 할 당신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외지인들에게 문을 여는 마을. 하회마을의 민박집에서 하룻밤 머물면 관광객들이 사라진 오래된 마을에서 수채화처럼 고요한 아침 풍경과 조우할 수 있다.

안동 풍류란, 하회마을

마치 하회마을을 한눈에 담으라고 그곳에 있는 것 같은 부용대에서 조선시대 8대 명당으로 꼽히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S자로 감싸며 돌아간다. 그래서 태어난 지명이 하회(河回). 흡사 물 위에 핀 연꽃 같다. 풍산 류씨가 600여 년을 살아온 동성마을이다. 남북으로 놓인 큰길을 경계로 위쪽이 북촌, 아래쪽이 남촌이다.

류씨 종가인 양진당과 북촌댁은 윗마을을 대표하고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을 소장한 충효당과 남촌댁은 아랫마을을 대표한다. 하회탈과 병산탈, 양진당, 충효당, 옥연정사, 겸암정사, 류시주가옥, 북촌댁, 남촌댁 등 국보와 보물 등이 수두룩하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잘 보존된 보기 드문 마을로 임진왜란도 피해 갔다. 서민들이 즐기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 ‘선유줄불놀이’가 병존했다는 점도 신기하다. 초가장, 담장장, 상여장, 가면장 등 30여 명의 마을 장인도 활동한다. 한국의 미와 문화를 간직한 하회마을은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더 귀한 마을이 됐다.

강가 모래밭에는 류성룡의 형인 겸암이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누르고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만송정(萬松亭)이 있다. 음력 7월 16일 밤에 열리는 선유줄불놀이는 이 소나무숲과 강 건너편의 부용대 꼭대기를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며 열린다. 소나무숲으로 아침 산책을 가던 길에 마을 아이들을 만났다. “안녕! 넌 성이 뭐니?”라고 물으니 “류 씨요!”, “저도 류 씨요. 쟨 류 씨 아닌데 이사 왔어요.” 마을의 주류가 된 풍산 류씨는 본래 풍산 상리라는 곳에서 살다가 이사를 왔다고 한다. 그런데 집을 지으려 하니 기둥이 세 번이나 넘어졌고 꿈에 신령이 나타나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만 명의 목숨을 구하라”고 하였단다. 큰 고개 밖에 초막을 짓고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등을 나누어준 후에야 마을에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눔 정신은 북촌댁이 이었다. 소작인들과 수확을 반반씩 나누었으며 인근에 초가를 지어 노비들에게 밤 시간은 가족과 지내도록 하였으며 담장 밖으로 화장실을 두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8대 명당으로 꼽히는 하회마을. 낙동강 물줄기가 마을을 S자로 감싸며 돌아간다. 그래서 태어난 지명이 하회(河回).

꼭 하룻밤 묵어가야할 이유란 게 있었다. 지산고택

하회마을에 외지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인데 하룻밤 머물게 되면 마을의 고요한 아침을 독차지할 수 있다. 초가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만송정에서의 아침 산책, 농가 밥집의 시골밥 등 포기하지 못할 것들이 매우 많다.

나와 후배는 지산고택의 초가 방에서 묵게 되었는데 뇌리에 선명한 것은 외풍이 심했지만 바닥만큼은 지글지글 끓었던 온돌방과 화장실이다. 밤과 새벽에 찬 서리 내린 잔디 마당을 고무신을 꺾어 신고 100미터 선수처럼 깔깔거리며 달려 다녔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난 것 같은 그리움이 남는 숙소인데, 아쉽게도 1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문을 닫는다. 이 밖에 하회마을 숙소로는 초가집 민박인 의석재, 한옥의 아담한 정취를 갖춘 회제고택, 250여 년 된 고택 숙소 가온당(석고고택) 등이 있다.

보기만 해도 온기가 느껴지는 초가방. 지산고택은 안방, 상방, 사랑방, 초가방을 손님에게 내어준다.

승정원 우승지 대사간 안동부사를 지낸 지산 류지영 선생이 1841년에 분가시 분재 받았다는 지산고택.

하회마을 농가 맛집, 작천고택

나와 후배가 머문 지산고택의 주인은 마을에서 아침밥을 청할 수 있는 곳을 몇 곳 일러주었다. 그러나 하회마을을 잘 알리도 없고 알려준 몇 곳의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한 채 산책에 나섰다. 그러다 메주와 감이 주렁주렁 열린 풍경에 발이 이끌려 찾은 곳은 작천고택이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감을 깎고 팥을 널고 콩 타작에 분주하셨다. 재빨리 일을 마무리한 아저씨는 부리나케 밭으로 나가셨고 따라나서려는 아주머니의 몸뻬 바지를 붙잡고 우리는 아침밥을 간청했다.

찬도 없고 밥도 새로 지어야 한다며 난감해하시던 아주머니는 30분 정도 마을을 둘러보고 오라셨다. 산책을 다녀왔더니 작은방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둥그런 쟁반에 큼직한 고등어구이와 시골 된장찌개, 김치 두어 가지와 나물 반찬, 매실장아찌 등이 놓여 있었다. 장아찌와 간고등어구이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싶었는데 예전에 식당을 하셨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고등어구이 칭찬이 잦아들지 않자 아주머니는 안동시장에서 대놓고 잡수신다면서 고등어집 이름을 귀띔해주셨다.

아침부터 과식으로 놀란 배를 진정시키는 후식은 마당에 준비되어 있었다. 한 건물인데도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작은 토담을 세운 독특한 구조가 작천고택의 명물이란다. 태어나 처음 보는데 사랑채 손님과 부녀자들이 마주치지 않도록 취한 조치였다.

밭에 나가야 한다는 아주머니에게 어렵게 청해 맛보게 된 안동 하회마을의 농가 밥상. 안동밥상에서 빠지면 서운한 간고등어가 주연을 맡고 요란하게 재료를 넣지 않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시골 된장찌개가 조연을 맡았다.

주인 부부가 농사 지은 콩으로 만든 둥그런 메주가 익어간다.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작은 토담을 세운 독특한 구조의 작천고택.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은 일자형 안채만 남아 있다.

* 소곤소곤 Tip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곳이 있다. 북서쪽 강변을 따라 펼쳐진 모래톱에 잘 생긴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소나무숲은 만송정(萬松亭)이라 부르는데 200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 류성룡의 형인 류운용이 강의 건너편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시키며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하여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으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수령 90~150여 년 된 소나무 100여 그루와 마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심는 어린 소나무들이 함께 숲을 이루고 있는 하회마을의 숨은 명물 만송정.

Infomation

안동시청 054-856-3013, 054-840-6591, //www.tourandong.com/main.htm

하회마을 경북 안동시 풍천면 종가길 40 054-854-3669(안동하회마을관리사무소), 09:00~17:00(동절기), 09:00~18:00(하절기), 입장료 3,000원

지산고택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종가길 35-14, 054-853-9288

의석재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남촌길 38, 054-853-1511

회제고택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14, 010-8330-2630(문두원)

가온당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25, 054-853-2207

작천고택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남촌길 76, 054-853-2574

글=조경자(//blog.naver.com/travelfoodie), 사진=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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