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부림사건과 국정교과서

영화 '변호인'

1981년 부산에서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불온서적을 학습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된다. 이들은 불법 감금돼 잔혹한 고문을 받고 국가보안법, 계엄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1년6개월~6년을 각각 선고 받는다. 80년대 대표적 용공조작사건인 '부림사건' 얘기다. 당시 이들의 변론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맡았으며 이 사건은 지난 2013년 영화 '변호인'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부림사건의 발단이 됐던 불온서적 중에는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있었다.3일은 세계적인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타계한지 33년이 되는 날이다. 카는 부림사건이 터진 이듬해인 1982년 11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책이 한국 땅에서 불온서적이 되고 이를 함께 읽은 이들이 고문을 받았다는 것을 카가 알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송우석 변호사)는 법정에서 영국 외교부에서 보내온 답변서를 읽는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카는 영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자 영국이 자랑스러워하는 학자다.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도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어보기 바란다."

E.H. 카

공교롭게도 이 말은 부림사건 이후 30년 이상이 지난 2015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3일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최종 확정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모든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헌법가치에 충실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했다.하지만 카는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진리로서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썼다. 또 "역사책을 읽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역사가가 누구인지 알려면 역사가를 낳은 사회를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역사가의 관점과 시대상황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카의 역사관은 역사교과서가 하나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 한다. 교육부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 웹툰은 이른바 좌편향 역사교과서로 교육받은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서 패배주의를 익혀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역사교과서를 본 학생들이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떠나고 싶어',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싫다'고 생각하는 그림도 실렸다. 국정 역사교과서로 부끄럽지 않은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카는 이렇게 썼다.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 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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