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수사기관 부실수사로 사망원인 단정 못해…국가 손해배상 책임 일부 인정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대법원이 대표적인 군의문사 중 하나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타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상훈)는 10일 허원근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허 일병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 부분은 기각하고 군 수사기관의 현저히 부실한 조사로 인한 손해배상 부분은 일부 인용해 허 일병 부모에게 각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한 원심을 받아들였다.
대법원. 사진=아시아경제DB
허원근 일병 사건은 1984년 육군 GOP에서 근무하던 허 일병이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김훈 중위' 사건과 더불어 대표적인 군의문사로 평가받는 사건이다. 특히 군의 사고당시 발표와 국방부 특별조사단 조사에서는 '자살'이라는 판단을 내렸지만,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내무반에서 다른 부대원에 의해 가슴에 총상을 입고 폐유류고로 옮겨져 다시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는 취지의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국가기관의 조사가 엇갈리면서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놓고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허원근 일병의 사망 원인과 군 수사기관의 부실조사에 따르는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 여부다. 대법원은 허원근 일병이 타살 당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타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허원근이 타살됐다는 점에 부합하는 듯한 증거들과 이를 의심하게 하는 정황들만으로는 부대원 등 다른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그렇다고 해 허원근이 폐유류고에서 스스로 소총 3발을 발사해 자살했다고 단정해 허원근의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사고 당시에만 수집할 수 있는 현장 단서에 대한 조사와 부검 등이 철저하고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허원근 일병의 사망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군 수사기관의 사고 당시 부실한 수사로 사망원인을 단정할 수 없게 됐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허원근의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정황사실이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헌병대가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직무상 의무 위반해위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군 수사기관의 현저히 부실한 조사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군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해 허원근의 사망원인을 밝힐 수 없게 됐음을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의 성립을 인정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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