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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주장 시절의 박지성 [사진=대한축구협회]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의 계획이나 평가란 선언에 그치기 일쑤다. 한 나라의 축구 대표 팀은 사물(私物)이 아니며, 우리 축구는 대중(즉 국민)과 호흡하고 교감하는 정서적인 일면을 지녔다. 축구협회의 회장이든 임원이든 대표 팀을 이용해 목적을 이루려 하거나 대표 팀에 사적 감정을 반영하려는 시도는 성공한 사례가 없고 번번이 역효과를 낳았다. 여론이란 늘 우매해 보여도 시간의 조탁을 거쳐 끝내는 진리에 도달하고 만다. 현실 속에서 부도덕과 이기심이 승리하는 경우에도 순간적이거나 단기간에 그칠 뿐이다. 대중은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사실 속에서 진실을 적출해낸다. 특히 축구에 대해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인간에 대해서는 강한 혐오감을 표현하며 그릇된 시도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허정무의 후임으로 대표 팀을 맡은 조광래는 잇따라 어려움에 봉착했다.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대표 팀의 세대교체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가장 큰 문제는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상징이었으며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매번 골을 넣고 대표 팀의 중심역할을 해낸 박지성의 대표 팀 은퇴를 전후로 발생했다. 박지성이 은퇴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축구는 아직 그 없이 축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조광래도 마찬가지였으리라고 생각한다.박지성은 2008년에 국가대표팀 주장이 되었고, 국가대표로서 은퇴할 때까지 완장을 지켰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다섯 골을 넣어 대표 팀 선수 가운데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또한 박지성은 그리스와의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골을 넣었고, 이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 그의 골은 2002년(한ㆍ일), 2006년(독일) 대회에 이은 3개 대회 연속골이었다. 아시아 선수가 기록한 첫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골로, 안정환이 보유한 아시아선수 본선 최다 골(3골)과도 타이를 이루었다.박지성은 2011년에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준결승인 일본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경기 100번째 출장 기록을 채워 한국 선수 중 여덟 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박지성 외에 홍명보(136경기)ㆍ이운재(132경기)ㆍ이영표(124경기)ㆍ유상철(123경기)ㆍ차범근(121경기)ㆍ김태영(104경기)ㆍ황선홍(103경기) 등이 센추리클럽 멤버다. 일본과의 경기가 박지성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였다. 우즈베키스탄과의 3, 4위전에는 나가지 않았다. 박지성이 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표 팀 은퇴를 예고하자 축구팬들은 큰 충격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대표 팀과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해왔으며 만성적인 무릎 부상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대체로 박수 속에 보내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표 팀의 경기력 차원에서 보면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발생했다. 대표 팀의 감독 조광래도 심각한 도전에 봉착했다. huhbal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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