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알바시네]44. 고종과 노무현, 영화 ‘한반도’

영화 '한반도'의 한장면.

딸은 재미없고 유치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딸의 의견에 반대한 건 아니다. 그가 재미없다고 하는 건, 우선 이야기가 단순하고 TV 아홉시 뉴스같은 분위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가 유치하다고 하는 건, 국새를 파내는 마지막 장면의 뻔한 반전같은 걸 가리키는 것이리라. 전자는 '스토리'의 문제이고 후자는 '영화적 장치'의 문제인 셈이다. 아이는 이미 헐리웃의 '눈'과 '심장 박동수'를 가지고 있기에, 이 영화가 성에 차지 않는다. 그와 나의 차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여도'가 아닐까 한다. 그는 그것에 관심의 발을 덜 담그고 있고, 나는 조금 더 담그고 있다. 이것이 흥미의 차이를 부르지 않을까 한다. 내가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말한 건 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재미의 문제.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대개 현실의 어떤 인물들을 떠오르게 한다. 현실의 인물과 영화 속 인물을 대비하면서 그 닮은 점과 차이를 생각해보는 맛은 썩 괜찮다. 영화 감독이 현실의 인물에 대해 가지는 관점도 찾아낼 수 있고, 그 관점이 보편적인 것인가 혹은 파당적인 것인가 혹은 개인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도 곱씹는 맛이 있다. 일본과 전쟁을 불사하는 대통령, 그것을 막는 현실주의자 총리, 국정원의 똑똑한 간부와 우직한 재야 사학자. 캐릭터들의 활약은, 현실 속에 어제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집요한 싸움과 알력의 틀을 영화 속으로 옮겨놓는다. 그것이 재미의 1번이다. 재미의 2번은 100년 전의 역사와 지금을 넘나들면서, 그 비교를 통해 '반복되는 역사'의 어리석음과 비극을 경고하고 있는 점이다. 대통령의 위험한 선택의 당위를 설득시키기 위해 영화감독은 '논리'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를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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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신선함의 문제. 나는 우리 영화가 이런 정도의 '담론'까지를 담아낼 수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대학 동창인 국정원 간부와 사학자가 논쟁을 벌이고, 또 대통령과 총리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설전을 이어가는 것은, 지금도 멈추지 않은 우리 사회 속의 통증이며 생기(生氣)이다. 영화는 호흡이 좀 느려지더라도 상관없이 그 논쟁을 중계한다. 영화는 '논쟁'을 담으면 지루해지기 쉽다는 공식을 그들이 간과했을 리는 없다. 다만, 이 사회에서 이 논쟁이야 말로 생생한 현실감을 지닌 '에너지'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의 내면 속에 잠재해있는 어떤 불안을 꺼내서, 음산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함대가 동해를 넘어 쳐들어오는 장면이다. 이런 서비스도 흔한 건 아니다. 최근 우리가 일본과 긴장 속에 대치했던 독도 갈등이 어떤 '위험'을 안고있는 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그 긴장이 그저 정치가들이 말로써 핑퐁하는 겁주기가 아니라, 저렇듯 수많은 목숨을 담보한 베팅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영화는 또, 정부종합청사에 폭탄이 터져 검은 연기가 뒤덮는 장면을 보여주고 경복궁의 전각들이 불타는 모습도 보여준다. 현실이 아니기에, 우린 안도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인 장면들 때문에 그게 현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하지만 이 영화는 참 건전한 영화이다. 옛날 영화 프로 앞에 붙던 '대한 늬우스'보다도 더 감동적으로 건전하다. 옛날에는 저 국가 홍보물을 의무감으로 봤지만 이젠, 돈 주고 보는 시대가 됐다. 국민의 영도자가 나와서 새마을 모자를 쓰고 벼이삭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전쟁을 명령한다. 고비고비마다 얄밉고 치사한 이웃나라를 영화 속에서나마 한 방 먹이는 대통령 덕분에 체증이 확 내려간다. 온 국민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대국민 서비스' 라 할 만하다. 그러나, 저런 영화적 자위 행위가, 자칫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현실의 외교를 지금보다 거칠게 하는 '국민 안목'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 설마.

명성황후 생가

'애국심 코드'를 건드리는 영화 치고는 상대를 그리 꼴사납게 박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헐리웃의 람보 영화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현직 대통령'의 다소 위험해 보이는 외교 게임들을 예찬하는 분위기 때문에, 한 사람은 기분 좋겠지만, 혹시 전국민들을 더 조마조마하게 하는 건 아닐까 약간 걱정된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저 영활 보고 '업'되는 그런 수준은 아니겠지, 설마.영화 ‘한반도’는 잠재하는 매력같은 게 있다. 그때는 별 감흥없이 지나쳤는데 한참 후에야 새로운 의미를 띠고 다가오는 무엇이 있다. 이를테면 고종과 노무현 전대통령을 같은 급(級)으로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그렇다. 한때 대통령의 사람들이, 노대통령을, 개혁군주 정조대왕과 나란히 놓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현군(賢君) 세종을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영화가 그를 고종과 비교한다고 해서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왕조의 적폐(積幣)를 드러낸 말기의 군주로, 무능과 무기력의 대명사로 꼽혔던 고종황제가, 국력이 쇠진하고 제국주의가 밀물치는 벼랑 끝의 위기에 나름대로 지혜롭게 대응하고자 고심한 명민한 리더였다는 주장이 영화 속에서 적극적으로 부각된 점은 인상적이다. 현실역사 속의 고종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영화 속의 그는 그 가운데서도 왕국의 미래를 위해 고뇌하고, 또 그 미래에 일어날 일을 들여다보는 혜안을 가졌다. 진짜 국새를 숨기고 ‘짝퉁 국새’로 일제가 결재를 강압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것이 영화 ‘한반도’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다. 난세의 참군주로 고종을 평가하는 영화는, 슬쩍 고종을 잰 천칭저울의 옆자리에 노무현을 올려놓는다. 전 왕조의 군주와 현 공화체제의 대통령을 같은 반열에 올리는 정서에는, 대통령의 역할과 권력의 한계, 그리고 사회 전반의 민주적 시스템을 간과하는 오류가 함께 따라오기 쉽다.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기가 현 사회로 수평이동할 수는 없다. 물론 비교와 비유는 그것이 나란히 놓인 참뜻에 더 주목하는 것이 옳다. 일본이라는 이웃강국(强國)의 도발과 야욕에 대해 ‘고뇌하는 리더’로서의 동질감을 찾을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일본이 자위대 함대를 풀어 한반도로 진격하는 상황은, 100년 전 일제의 조선병탄의 ‘리플레이’에 가깝다. 두 개의 동질적인 위기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 때문에, 두 리더는 동일시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탐욕적인 상대인 일본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국민적인 결속감이 커지면서, 전운(戰雲) 속의 리더는 영웅이 된다. 고종과 영화 속의 대통령은, 일본을 불굴의 투지와 담대한 용기로 이겨내는 국가영웅의 표상이다. 영화 ‘한반도’가 독도나 역사 교과서, 신사참배 문제 등에서 보여줬던 노대통령의 강공법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종을 둘러싼 친일 간신배와 현재의 ‘일본 외교와 관련한 현실론자’가 동일시되는 것도,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단순한 교훈을 넘어서서, 현실론자들을 강력하게 힐난하는 모티프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결코 간단할 수 없는 정치를 단순화하고 국제 문제를 ‘게임’으로 치환함으로써, 매우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는 영화가 되었다. 특기할 만한 일이다.

영화 '한반도'의 한장면

이 영화는 초반부에 강렬한 ‘에피소드’ 하나를 담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육박하는 칼끝으로 보여주는 게 그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본다면, 딱이 필요한 장면이 아닐 듯 싶기도 하나, 감독은 매우 공을 들여 이 장면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역사 교과서 속으로 들어가 있는 '100년 전의 상처'를, 몇 줄의 맥락으로 실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리얼플레이로 생생하게 다시 돌릴 수 있는 게 영화다. 이 명성황후 장면은 일제의 만행을 눈 앞에 다시 재현시켜서 영화 내내 끓어야할 ‘분노’를 예열하기 위해서 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이 궁녀와 나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장면과 마침내 대례복을 갖춰입은 명성황후의 몸에 수십개의 칼들이 사방에서 덤벼들어 난자하는 장면은, 영화의 본류와 상관없으면서도 강한 잔상을 남기는 ‘슈퍼 에피소드’다. 고종의 왕비인 민씨가 황후(皇后)가 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이 짜놓은 틀에 의해서이다. 일제는 쇠락한 호랑이인 청(淸)과 조선의 결연을 끊으려면, 고려와 조선 등 천년에 걸친 ‘사대(事大)’를 청산하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했다. 중국으로부터의 국가적 완전독립은, 조선 병탄을 위한 설계의 일부였다. 조선은 졸지에, ‘황제의 나라’ 중국보다 한 급 낮은 ‘왕의 나라’에서 황제의 나라로 승격된다. 고종은 황제가 되고, 민비는 황후가 된다. 이 호칭은 이후 역사에서 국가 정체성을 재인식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명성황후는 그래서 그 이전의 선배 왕비들과는 다른, ‘강한 자아’를 지닌 황후이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일제의 칼끝 앞에서 당당히 밝히는 여장부의 면모는 후대의 상상력이 발동한 결과이겠지만, 어쨌거나 명성황후의 소신과 개성은 일제가 걸림돌로 생각할 만큼 강하고 위협적이었던 게 아닐까 한다. 우연한 걸음 끝에,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와 기념관에 들렀다. 그녀를 시해(弑害)하러온 무도(無道)한 일본 낭인들 앞에서 국가와 사직의 안위와 미래를 걱정하고 개탄하는 일장 연설을 하는 장면이, 한때 이 생가에서 뛰놀았을 ‘소녀 민씨’와 겹치면서, 삶의 시작과 끝을 꿰뚫어 살핀다. 오래된 TV사극인 ‘왕비열전’에서,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권력을 쟁투(爭鬪)하는 당찬 모략가로 각인되었던 그녀. 결국 이런 사사로운 권력 농단이 왕조를 망국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는 진단이, 그 당시엔 하나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명성황후>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그녀는 단순히 처참한 종말을 맞은 비운의 왕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신있고 자부심강한 캐릭터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명성황후의 명예를 되찾는 일은, 국가 정체성을 되찾는 일과 같은 궤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 나라의 왕비도 지킬 수 없었던 역사를 지닌 우리가, 그녀의 생애를 폄하하거나 욕할 권리가 있기나 하나 하는 자괴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황후의 슬픈 최후는, 그녀가 바뀐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바뀜으로써, 그녀를 ‘아름답고 귀한 여인’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생가와 기념관은, 역사적 인식이 전환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리라. 찌는 듯한 여름날, 툇마루는 그 격정의 삶처럼 끓어올라, 문득 걸터앉은 사람을 다시 내려서게 했다. 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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