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사랑이 조금 식을 때(181)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그렇게 묻지만 그 '얼마나'는 불안을 씻고싶은 보험의 욕망일 뿐이다. 사랑의 양을 견적내는 일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양으로 사랑을 승부하는 일 또한 유사 이래 내내 실패해왔을 뿐이다. 사랑은 살며시 고개 드는 조짐인 경우가 많으며, 무엇인가를 향하는 방향에 가깝다. 그것이 다시 고개를 가만히 숙이는 것, 그것이 다시 가만히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 그것은 대개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랑이 식는 조짐은 워낙 미세하여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쉽다.사랑이 가장 설레고 아름다울 때는, 그런 기분이 막 동하기 시작했을 때의 희미하고 아슴한 상태의 환장할 기분 속에 있다. 그것이 또렷해지고 굳어진 사랑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피어날 때가 그러하듯 시들 때도 그러한 모양이다. 사랑이 이우는 것은 마른 장미꽃처럼 바싹거릴 때가 아니라, 살짝 마음의 물기가 빠져나가는 그 서운함 가운데에 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지만, 햇빛이 성기어지듯 어쩐지 서늘해진 말과 표정과 생각과 기분에 이미 그 사랑의 가을이 다가와 있다. 아직 희망이 많아 보이는데, 아직 지니고 있는 사랑의 캐시가 많은데...... 햇살쪽 마음이 그늘쪽 마음에게 그렇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절정에서 살짝 고개 숙인 그때부터가 내리막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어가는 것은, 커피가 식는 속도보다 빠르다. 식은 사랑을 태연히 그전처럼 마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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